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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 북한 배경 추리소설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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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북한을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는 미국인 정보요원이 평양에서의 생생한 체험을 녹여 쓴 추리소설이 한국어로 발간된다.

한국어판 제목은 『평양의 이방인』(황금가지). 2006년 말 미국에서 『고려호텔의 시체(A Corpse in the Koryo)』라는 제목으로 출간, 워싱턴 포스트가 ‘부시 대통령의 외교팀이 자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제임스 처치’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10일 서울을 찾았다. 남북한을 비롯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정보요원으로 수십 년간 활동해 왔다고 밝힌 그는 “북한 당국에 신분이 탄로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1940년대에 태어났다는 사실 말고는 신상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90년대 북핵 협상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한 그는 “이제는 정보요원 일을 그만두고 저작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북한의 말단 경찰인 ‘오 수사관’이 미궁의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처치는 ‘오 수사관’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들어 3권까지 이미 출간했고, 마지막 4권을 구상 중이다.

그는 “북한을 배경으로 한 영문 추리소설이 아직 없다는 데 착안했다”며 “북한에서 활동했던 경험, 만났던 사람들, 남북한에서 근무하면서 쌓인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처치는 순수 추리소설을 쓰고 싶었기에 이 소설에서 정치적인 시각을 일절 배제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바라본 사람의 관점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로, 핵이나 미사일에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주인공 ‘오 수사관’을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에 파견되기 전, 몇 년 동안 관련 공부를 했기에 잘 안다고 생각하며 현지에 갔지만 고려호텔 방에 앉으니 고정관념들과 배웠던 지식들이 다 창 밖으로 사라지는 걸 느꼈다”며 “밖에서 바라본 북한과 안에서 느낀 것은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 근무하는 동안 주민들을 접촉해 보니 의외로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 많았다”며 “북한 체제의 과오로 인해 주민이 가장 크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판 서문에선 “이 책을 북한 주민에게 바친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는 “83년 당시 북한 조종사 이웅평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남측으로 귀순해 왔을 때 서울에 있었다”며 “이웅평씨 회견을 본 남한 동료들이 ‘와, 우리와 똑같네’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분단 현실이 슬펐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 책을 일본·독일·그리스 등에서도 현지어로 출간했지만 특히 한국어판을 기다려 왔다며 “한국인이 북한을 보는 시각은 서양인들과는 다를 것이기에 한국에서의 출간은 작가로서 나에게 중요한 시험대”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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