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선거기획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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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34년 캘리포니아에서 미국 최초의 선거전문회사인 「위태커& 박스터」사를 설립한 위태커 클렘은 그에 앞서 지방신문의 정치부기자로 일하다 한동안 침례교 목사로 재직하기도 했다.기자와목사의 경력을 조화시키고자 30년대초 광고업계 에 뛰어든 그가본격적인 선거전문회사를 차린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이발사 등록제 법안을 통과시키려 준비하고있을 때 이 법안에 반대하는 이발사 단체가 그의 광고회사에 반대 캠페인을 벌여주도록 의뢰해 왔다.위태커는 아이디어를 짜내려고심하다 절묘한 착상이 떠올랐다.주의회의원들 가운데 머리를 깎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그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람은 모두 이발사들일 것이라는 점이었다.그는 의원들과의 개별접촉을 포기하고 이발사 단체로 하여금 주의회에 탄원서를 내게 하는 한편,이발사 개개인에게는 의원들이 이 발할 때마다 귓속말로 이 법안의 문제점을 설명하도록 했다.이 작전이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이다. 그 무렵 정치책략가로 유명했던 레온 박스터와 결혼한 위태커는 부부의 이름을 딴 「위태커 & 박스터」사를 설립하고 선거때마다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58년 공화당 내분에 휘말려 사세(社勢)가 갑자기 약화될 때까지 24년간 이 회사 는 의뢰받은 75건의 선거전을 치렀는데 당선율이 90%에 이르렀다니 그 위력을 짐작할 만하다.
30년대만 해도 미국의 선거전문회사는 1주(州) 1개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전국 규모의 수백개 회사들이 치열한 선거전을 벌인다.선거운동을 대행해준 후보자가 낙선하더라도 회사는 돈을 벌수 있으니 이런 회사는 갈수록 늘어난다.그러나 자질이 부족한데도 선거전문회사만 믿고 선거전에 뛰어드는 후보자가 덩달아 많아지는 현상도 문제다.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광고회사들이 고작 홍보물을 제작하거나 유세준비를 해주는 정도였지만 최근 우리나라에도 후보자들의 선거캠페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는 본격적인 선거기획 회사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이 경우 전체비용을 한꺼번에 지급하는게 상례이므로 그것이 선거비 상한(上限)을 초과하면 당연히 위법문제가 제기된다.선관위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선다니 그것을 피해가려는 회사들의 아이디어 경쟁도 치열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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