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뭄’에 목 타는 금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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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해외에서 5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려던 우리은행은 발행을 연기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금 금리로는 도저히 돈 빌릴 엄두가 안 난다”며 “일단 상황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농협중앙회도 이달 중 5억 달러 규모의 해외채권 발행을 추진하다 보류했다. 농협 관계자는 “상당 기간 미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이 ‘달러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에서 돈을 빌려오는 금리는 사상 최고치에 육박했다. 비싼 정도가 아니라 채권 발행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란 게 은행 관계자들의 말이다. 차입난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빚어진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다. 하지만 중국·멕시코 등과 비교해도 우리의 조달금리 오름폭이 크다. 정부의 국채 상환 능력을 반영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가산금리도 최근 급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금융시장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약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입 비용 급증=외화 차입난은 미국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도산했던 지난 3월 정점을 이루다 5월 들어 다소 호전됐다. 은행들에는 마치 가뭄 끝 단비 같았다. 하지만 지난달 이후 다시 차입 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우리은행 박동영 자금부장은 “반짝 열리는 듯했던 달러 창구가 금세 닫혔다”며 “외국 금융회사들의 경영난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난기류인 데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경기후퇴 가능성이 커진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한국의 국가 신용디폴트 스와프(CDS)프리미엄은 8일 1.23%로 지난 3월의 최고치(1.25%)에 근접했다. 1년 전에는 불과 0.16%였다. 해외에서 같은 돈을 빌려도 이자를 그만큼 더 얹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CDS프리미엄은 2%를 넘어섰다. 장기 차입이 막히니 은행들은 만기 1년 이내 단기 자금을 빌려 구멍을 메우고 있다.

◇“장기화되면 위험”=차입난이 하반기까지 이어지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단 해외채권의 만기가 몰리는 9~11월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대로 간다면 3분기에는 해외채권 발행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해외조달 규모가 큰 은행들은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그동안 해외채권 발행을 늦춰온 은행들이 한꺼번에 자금 조달에 나설 경우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공기업에 외화 차입을 전면 허용하면서 은행들은 물론 공기업까지 해외 자금시장으로 몰리면 조달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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