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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본 각당 TV 광고] "정책은 없고 감성만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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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내가 두어번 눈을 끔뻑인다. 곧 이어 굵은 눈물 한 줄기가 주름 가득한 얼굴을 타고 흐른다. TV에서 본 이 장면이 사람들의 가슴을 때렸다. 그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사내는 대통령이 됐다. 바로 지난 대선 때의 일이다.

미국에선 1964년 민주당 린든 존슨 후보가 꽃잎을 뜯는 소녀와 핵폭발 카운트다운을 연결한 광고 덕을 크게 봤다.

TV 광고는 힘이 세다. 총선 광고전이 한창이다. 돈도, 입도 꽁꽁 묶은 선거법 때문에 그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대부분의 주요 정당은 지난 주말부터 회심의 2편을 선보이며 막판 표심 흔들기에 들어갔다.


①한나라당(1탄)=어머니(국민)에게 회초리를 맞는 아들(한나라당)을 등장시켰다. ②민주당(2탄)=추미애 선대위원장의 '3보1배' 장면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만들었다. ③열린우리당(1탄)=탄핵 가결에 절규하는 소속 의원들의 모습을 담았다. ④민주노동당(2탄)=환경미화원이 봉걸레를 들고 '그들만의 (16대) 국회'를 청소하고 있다.

◇키워드는 '박근혜'=이번 광고전의 핵심 단어는 '박근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열린우리당의 첫 광고부터 그렇다. 탄핵안 가결에 울부짖는 소속 의원들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환하게 웃는 한나라당 朴대표를 결합했다. 최종 편집에만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열린우리당은 최병렬 전 대표가 물러나기 전부터 이 광고를 준비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朴대표의 선출을 정확히 맞혔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됐다면 완전히 고쳤어야 할 뻔했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탄핵 가결 전에 웃은 것을 교묘히 편집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2편(전국정당편) 광고 역시 '박근혜 바람'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외대 김춘식(신문방송학)교수는 "전라도.경상도.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을 잇따라 등장시킨 것은 전국정당을 강조해 '박풍(朴風)'의 영향권에 들어간 영남표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60대 어머니에게 회초리를 맞는 40대 아들을 등장시켰다. 당(아들)이 국민(어머니)에게 잘못해 회초리를 맞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세대 한정호(신문방송학)교수는 "광고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국민이 아니라 박근혜 대표를 상징한다"며 "어머니인 朴대표가 '아들(한나라당)을 때려 버릇을 고쳐놓을 테니 한번 좀 봐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했다.

◇민노당에 웬 오렌지?=제작 뒷얘기도 무성하다. 민주노동당은 때아닌 오렌지 논란을 겪었다. 민노당 광고(1편)는 가수 한대수씨의 노래 '행복의 나라'에 맞춰 환경미화원.집배원.회사원 등이 활짝 웃는 모습을 내보내 좋은 평을 얻었다.

문제는 중간에 과일장수로 보이는 등장 인물이 오렌지 상자를 들고 나온 것. 당원과 지지자들에게서 "왜 수입 과일인 오렌지를 썼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1, 2편 모두에 나오는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란 문구는 원래 브라질산(産)이다. 구두닦이 출신의 룰라 대통령이 대선 때 사용했다.

한나라당은 종아리 맞을 모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권신일 홍보부장은 "맞는 장면이 많다는 걸 알고 그냥 돌아간 사람도 있었다"며 "하도 많이 때려 배우가 '나도 프로인데 입원비는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껌 광고만도 못하다"=이번 총선 광고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혹평하고 있다. 15년 경력의 한 광고기획자는 "몇백원짜리 껌 광고도 제품의 특성과 기능을 고려해 만든다"며 "어느 당이건 정책노선과 당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광고기법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국내 굴지의 한 광고대행사 간부는 "한나라당 광고는 부정적 영상(매 맞는 장면)을 지나치게 길게 배치했다"며 "이럴 경우 사람들이 싫어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도 탄핵의 부당성에 대한 설명보다 자신들의 '억울함'만 강조하는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소나무와 '3보1배' 등을 등장시킨 민주당에 대해서는 "지나친 절박함과 초조함이 묻어난다"면서 "상품 광고를 할 때도 절박한 회사라는 티를 너무 내면 물건이 더 안 팔린다"고 말했다.

연세대 한정호 교수는 "정치광고는 청소년들에게 정치의 역할을 가르치는 기능도 있다"며 "국회에서 주먹질하고, 회초리로 맞고 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뭘 배우겠느냐"고 말했다.

김선하.김은하.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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