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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줏대있는 對北정책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국정부가 2백만달러 규모의 대북식량지원 계획을 발표했다.하와이에서 한.미.일 3국 고위당국자가 만나 대북정책을 「조율」한지 9일만이다.
정부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다.
정부대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직접지원이 아니라 국제기구를 통한인도적 차원의,상징적 지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친 사항이라며 변함없는 한-미간의 대북공조를 운위하고 있다.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이 대북지원계획이 발표되던 날,마이크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불가를 공식발표했다.
그동안 클린턴 대통령의 4월 방한을 은밀히 추진,어느정도 성사가능성까지 있다고 믿었던 정부로서는 뒤통수를 한방 맞은 셈이됐다.청와대 한 관계자는 「충격적」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같은 날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가에서제외키로 했다는 미언론 보도도 나왔다.
정부는 「사실무근」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이 대북경제제재 추가완화 가능성을 한국정부에 타진해 왔다는 정부당국자의 얘기까지나오고 있는 걸 보면 단지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이상 느긋해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94년 북-미 제네바합의부터 대북식량지원에 이르는 일련의 상황변화를 놓고 볼때 과연 대북정책의 주체가 누구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미국은 말로는 당사자 해결원칙을 강조하며 운전사는 어디까지나 한국이지 자기들은 조수에 불과하 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한국은 미국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의 중심적 역할과 한-미공조를 내세워 왔다.
그러나 이제 정부관계자들 사이에서조차 미국의 독자적.독선적 행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뒤늦게 『미국이 북한에 끌려 다니며 이용당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미국의 처사가 섭섭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그네들을 탓할 것도아니다.우리가 그들에게 그토록 우습게 보인 구석은 없는지 새겨봐야 할 때다.그간 문제가 됐던 쌀문제만 하더라도 우리가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큼 처신했는가도 곱씹어 봐야한다 .
대북정책의 중심축을 다시 세워야 한다.줏대가 있어야 한다.
정권의 변화와 정치적 고려에 따라 즉흥적으로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한 미국의 오만과 압력을 한탄하는 서글픈 자화상은 고쳐질 수 없다.
배명복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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