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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일 쇼크 왔다] 내놓는 지표마다 “외환위기 후 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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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독산동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김종민(37·가명)씨는 승용차를 집에 놔둔 지 오래다.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다고 봤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다. 물가는 치솟고 호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진다.

회사 주변에서 4000~5000원짜리 점심을 찾기가 힘들다. 설렁탕·부대찌개는 대부분 6000원을 넘었다. 밀가루 값이 최근 88%나 뛰면서 가끔 간식으로 즐기던 라면도 3000원이나 한다.

반면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은 감당하기 힘들다.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비는 올 들어 월 3만~4만원 올랐다. 아파트 관리비도 뛰었다. 그는 “살림이 매월 적자라 원금을 못 건지더라도 생명보험을 해약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주부를 환영하는 회사를 찾기 힘들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6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초고유가 대응 에너지 절약 대책’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한 총리,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이재훈 지식경제부 차관. [사진=김상선 기자]

3차 오일쇼크가 한국 경제 구석구석을 덮치고 있다.

물가를 감안한 지금의 실질 유가는 2차 오일쇼크(1978년 12월~81년 2월) 때보다 높다.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의 8월분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145.29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차 오일쇼크 때의 유가를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환산한 수치(104.1달러)보다 높다. 물가상승률에다 에너지효율 개선을 고려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실질 실효유가는 2차 오일쇼크 때 배럴당 150.2달러로 추산됐다. 현 유가가 턱밑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원유 의존도는 2차 오일쇼크 때보다 개선되지 않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1분기 한국의 원유 의존도(원유 소비액/명목 국내총생산)는 8.9%로 81년과 같다.

이런 가운데 유가가 급등하자 서민들의 생활은 힘겹다. 5월 수입물가는 1년 전에 비해 44.6%나 올랐다. 6월 소비자물가도 9년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5.5% 뛰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의 수입물가 급등세를 감안하면 향후 3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가 오르니 소득은 가만히 앉아서 줄어든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소득(GDI)은 지난해 동기에 비해 0.2%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추세면 2분기에는 소득이 줄어든 것으로 한은은 추산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가 급등의 여파로 올해 일자리는 지난해보다 10만 개 이상 줄어든 18만 개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경제지표도 나빠지고 있다. 재정부는 이달 초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6% 내외에서 4.7%로 낮췄다. 그러나 이것도 달성이 쉽지 않다. 재정부는 연평균 유가(두바이유)를 배럴당 110달러로 가정하고 성장률을 전망했지만 이미 유가는 140달러를 넘어섰다.

앞으로 유가가 더 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차킵 켈릴 석유수출국기구(OPEC) 의장은 “올해 유가는 배럴당 170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나카 노부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석유 수급의 어려움이 2013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연평균 125달러에 달하면 성장률은 3.7%에 그친다”고 분석했다.

수입물가가 치솟으면서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도 위험하다. 올 상반기에 57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첫 적자인 데다 규모가 작지 않다. 올해 경상수지도 100억 달러 안팎의 적자가 예상된다.

문제는 이런 위기를 돌파할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에너지 절약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같은 처방 외에는 묘안이 없다. 홍창의 관동대 교수는 “3차 오일쇼크가 왔는데도 정부가 단기 대책 외에 쓸 카드가 별로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 한상완 본부장은 “기업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 같은 경제주체의 체질을 강화하는 대책을 차근차근 펴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김종윤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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