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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07. ‘부드러운 여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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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더 강하게, 더 도도하게, 무대 위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 나는 지난 30년간 노력해왔다. 긴 드레스나 몸에 꼭 붙는 드레스를 입고 굽 높이가 10㎝나 되는 구두를 신고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무대 위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기 위해, 그리고 노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힘 있게 손을 뻗거나 하늘을 향해 치켜든 고개·목과 어깨 선이 더 강렬하고 아름다워 보이도록 하려고 얼마나 연습해왔던가!

스타는 모름지기 하늘 높이 뜬 별처럼 닿을 듯하지만 닿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열광하는 팬들 앞에서도 도도하게 가벼운 눈인사를 하거나 말 없이 목례만 했다. 메이크업·헤어스타일은 물론 매니큐어 색깔까지 강한 개성을 드러내는 것 일색으로 정해 패티 김 고유의 스타일을 만들어 왔다.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완전히 뒤로 벗어 넘긴 헤어스타일과 눈매를 강조한 메이크업, 강렬한 색깔의 립스틱·매니큐어 등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거기에 과감한 실루엣의 이브닝 드레스와 액세서리로 화려하고 강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양철지붕 집에 사는 스님을 만나 본 뒤 부드러워지기 위한 연습을 했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했다. 우선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메이크업을 하기로 했다. 빨강·자줏빛 등 강렬한 원색 계열의 립스틱 대신 베이지색이나 오렌지색 계열의 부드러운 파스텔톤 립스틱을 발랐고, 눈매를 부드럽게 연출하기 시작했다. 헤어스타일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의상 역시 캐주얼 느낌을 가미한 세미 스타일을 간혹 입었다.

가장 많이 신경 쓰고 변화를 준 것은 말과 행동, 그리고 무대 위 모습이었다. 드레스 자락을 살짝 쥐고 사뿐사뿐 걷는 연습도 하고,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 두 손을 펼쳐 보이는 연습도 거울을 보며 수없이 반복했다. 공연이나 방송 출연이 끝난 뒤 팬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대기실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한창 번잡한 때가 지난 뒤에는 몇몇 팬이 남아 있어도 자연스레 그들 앞으로 지나가는 여유를 부렸다.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의식적으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하기도 했고, 내가 먼저 소리 내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30년간 몸에 밴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무심코 예전 버릇이 나오기 일쑤였지만 그때마다 ‘부드러운 표정’과 ‘겸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부드러운 언행과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오기까지 정확히 10년간 노력했다. 30년 동안 만들어온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꼬박 10년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그 10년은 나에게 ‘나이 듦의 행복’을 가르쳐 준 소중한 기간이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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