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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정주영-정인영 ‘형제의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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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현대건설이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태풍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필리핀 해역을 거쳐 걸프만까지 1억 달러가 넘는 대형 재킷들을 19번이나 바지선으로 운반하는 대모험을 시도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주 공사인 주베일의 산업항 신항 건설이 규모에서나 내용면에서 대형 재킷들을 바지선으로 운반했다는 전무후무한 뉴스까지 덮을 정도로 엄청났던 것이다.

77년 3월의 사우디아라비아 ‘라스 알가르’ 항만과 77년 6월의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만, 규모 면에서 다소 작긴 하지만 78년 1월의 ‘두바이 발전소’ 수주까지, 중동지역의 대형 공사를 연거푸 따내게 되는 것도 현대건설이 세계적인 선진 건설사들을 제치고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75년 중동에 진출한 이후 79년까지 현대건설이라는 하나의 회사가 무려 51억6400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성공적인 주베일 산업항 수주로 기업의 브랜드를 높이지 못했다면 살벌하기까지 하다는 중동 시장에서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회고.

“주베일이 사우디 동부 쪽 유전지대 아니에요? 거기에 산업항을 건설하겠다고 한 거는 주베일 지역에서 나오는 원유 수송하고 그 지역 산업시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원유 수송 때문만이 아니고 갖가지 산업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주베일의 야심이 담겨 있는 거라서 단순히 항만 공사로만 생각할 게 아니다 그거지. 거대한 산업도시를 건설하는 셈이에요. 그래가지고 사우디 항만청에서 발주를 했거든? 그게 입찰은 76년 2월에 했는데 우리가 발주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건 불과 7개월 전이었단 말이야. 75년 7월께 알았으니까. 그러니 생각해 봐요, 세계적인 공사라고 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7개월 정도밖에 안 남은 시간을 가지고 덤벼들었으니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녔겠어. 뛰어다니기만 해서 되는 일이라면 막 달리지, 하하항.”

-시간적으로 촉박했다는 것 외에도 어려움이 많았다는 말씀입니까?
“시간도 시간이지만 그 당시 우리 건설이라는 건 그런 엄청난 항만공사를 해 본 적도 없지만 끼어들 자격조차도 안 된 거예요. 현대가 그때 바레인에서 아랍수리조선소를 건설하고 사우디에서 해군기지 확장공사도 하고 있었지만 우리까지도 산업항 공사에는 아예 입찰 초청 대상에 끼지도 못했던 거지. 그럴 정도로 인지도나 평가가 낮았던 거야. 그뿐 아니고 어떡하든 초청을 받는다 해도 막상 입찰하려면 보증이 또 있어야 해요. 근데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을 한다고 해도 안 된다고 했어. 대한민국도 믿지 못한다고 했으니까 나머진 말할 것도 없잖아요. 하나에서 열까지 안 된다는 것뿐이고, 전부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길이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해외공사를 한없이 했는데 주베일 공사만큼 사력을 다하고 애를 먹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공사 자체 때문이 아니고. 저걸(산업항) 먹긴 먹어야 되겠는데 처음에는 도무지 뚫을 구멍이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런데 결국 우리가 수주했거든? 참 엄청난 도전을 한 거야, 하하항. 그걸 모르고 회사 안에서는 사장부터 될 일이 아니라고, 어떡하든 일심동체가 돼서 덤벼들어도 시원찮을 텐데 자꾸 회사 망한다는 소리만 하고. 그땐 전부 그러지 않았어? 시원찮은 것들이 말이야.”

자격도 없으면서 입찰 참여

정주영 회장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비록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지 불편했던 심정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 사실 그 당시 사장은 정인영 전 한라그룹 회장이었지만 그는 공사 규모에서나 경험과 공법에서나 현대건설이 도전을 하는 그 자체가 회사의 사망 선고라면서 끝까지 반대했다.

실제로 76년 그 시점의 현대건설이 산업항을 수주하려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덤핑이 불가피하고, 결과적으로는 회사 문을 닫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작 사우디로 날아가 정보를 입수하고 수주활동을 했던 전갑원 전 부사장이나 김광명 전 사장 같은 중역들은 정주영 회장과 정인영 사장 사이에 끼여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여간 갈등하고 고생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솔직히 정주영 회장님하고 정인영 회장님(당시 사장)이 산업항 입찰 문제를 놓고 매일 회의하고 전략 짜고, 지금 생각하면 TF팀인데 입찰 초청을 받으려고 사무실까지 만들어놓고 정신없이 덤벼들었는데, 그때부터 두 양반은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수주를 해야 한다는 건 정주영 회장님이고, 하면 안 된다는 게 정인영 회장님이었으니까 사이가 좋을 리 없죠. 회장님이 회의를 주재하실 땐 정 사장님이 침묵하고 정 사장님이 회의하면 ‘현대 망하는 거 보려고 그래?’ 이러면서 짜증내시고. 그런데 사실은 수주를 하고 나서도 열 명한테 물어보면 아홉 명은 현대건설 망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정인영 사장님도 아주 잘못 본 시각은 아니었지요. 하여간 발주정보를 듣고 현장답사를 갔는데, 그때 김광명 이사(후 현대건설 사장)하고 같이 갔어요. 나는 바레인 수리조선소를 따고서 진급이 상당히 빨랐어요. 그때 내가 상무였을 겁니다. 좌우간 사우디에 나가 있는데, 정인영 사장께서 부르시는 겁니다. 나는 수첩에 메모를 하니까 지금 얘기 그대로예요. 당장 귀국하라는 거지요.”(전갑원)

-정인영 회장이 직접 호출한 겁니까?
“그분이 그때 사장님이지만 실질적으로 명예회장님 못지않게 회사에서는 카리스마도 있고 거의 모든 걸 결정하셨던 분 아닙니까. 그러니 일단 귀국을 해야죠. 귀국보고를 하니까 참 무섭게 쳐다봐요. ‘네가 회사 망쳐 놓으려고 그 짓 하고 있어?’ 긴 말씀도 없어요. 그래서 자료를 쭈욱 펼쳐 놓고 설명을 드렸지요. 이 산업항만 따내면 35% 수익은 충분히 된다고 말이죠. ‘네가 뭘 근거로 해서 그런 장담을 하는 거야. 네가 언제 사우디에 가서 일을 해 봤어? 입찰이고 뭐고 당장 집어치우고 정리해서 들어와!’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그렇지만 명예회장님 명령으로 나가 있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들어옵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해 놓고는 다시 출국해서, 그땐 싼 데만 골라 다녔으니까 삼류호텔에 있는데 텔렉스가 계속 들어와요. 정인영 사장님 명의로 몇 장씩 날아드는 거지요. 절대 입찰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말이지. 근데 정주영 회장님은 입찰 붙어서 따낼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그러시고.”(전갑원)

-입장이 난감했겠습니다.
“그건 말로 다 할 수가 없고 굉장히 곤란했어요. 지휘자가 둘인데 어느 지휘봉을 쳐다봐도 혼나게 돼 있고 말이지. 해외 공사를 수없이 나갔는데 그때처럼 처신하기가 힘든 적이 있었을까? 현대가 어떤 회사라는 거 잘 알잖습니까. 우린 명예회장님 눈에 꽂히면 출세하는 거고 눈 밖에 나면 다음 날 책상 정리를 해야 되잖아요. 내가 기업체 오너는 황제라고 그랬는데, 왜 황제라고 하겠어요. 신하의 목은 자기 목이 아니라 황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현장에 나가 있으면서도 심정이 어땠겠어요. 정인영 회장님 파워도 막강했지만 결국 정주영 회장님 말을 들어야 되잖아요. 그렇다고 정인영 회장님 얘기를 어린애처럼 정주영 회장님한테 전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가지고 알아들으실 만큼 말을 ‘스무스’ 하게 돌려가지고 정인영 사장님께서 걱정을 상당히 하시는데 직접 좀 만나주시라고, 그래야 저희가 수주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때부터는 정주영 회장님한테서 매일 텔렉스가 와요. 아무 걱정 말고 잘하라고, 누구 말도 듣지 말고 무조건 따낼 수 있도록 하라고. 참 미칠 노릇이지. 그러니 수주활동 하기도 바쁘고 힘든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겠어요.”(전갑원)

이 부분은 현대가(現代家)의 내홍이기도 해서 간략히 살피지만 어쨌든 전갑원 부사장은 주베일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하는 이유가 공사 금액도 컸지만 무엇보다 현대로서는 기술습득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이중 목적이 분명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우리로서는 시급했던 것이 선진 건설기술을 습득하는 문제였단 말이죠. 아무래도 우리 기술은 낙후돼 있었고, 그걸 해외에 나가서 외국 일류회사들하고 경쟁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자, 우리도 건설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설계도나 건설현장을 한 번만 딱 봐도 배우는 게 엄청나거든요. 가령 고민을 무척 하고 있는 기술인데 풀리지 않다가 옆에서 딱 한마디만 들어도 굉장한 기술이 될 수 있는 것들이 프로젝트 현장에서는 자주 나온단 말이죠. 저 사람들은 저렇게 시공하는구나, 장점이 뭔가, 우리가 판단할 땐 이랬는데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게 상당히 커요. 그래서 얻은 기술이 확실히 많아요. 결국은 현대건설이 세계 건설 랭킹 뭐 10위다, 9위다, 8위다 하는 것이 중동이 없었다면 생각도 못하는 것이죠. 바로 그런 랭킹이 기술에서 비롯되는 거니까 주베일 프로젝트는 명을 걸고 먹어야 한다고 했던 겁니다.”

그러나 기술 습득도 입찰자격을 얻어야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무엇보다 정 회장은 입찰자격부터 얻는 일이 급선무였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했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는 입찰 자격도 얻지 못할 정도였다니까? 입찰 자격이 없다는 건 발주처에서 입찰 초청도 하지 않겠다는 얘기잖아. 국내에서는 큰소리 뻥뻥 치고 있는데 니들 정도 가지고는 어림없는 공사다 이거지, 하하항. 미국의 브라운 앤 루트라는 회사 알지요? 거기를 필두로 해서 산타페, 레이몬드 인터내셔널, 영국의 코스테인·타막, 서독의 보스카리스, 네덜란드의 스티브, 프랑스 스피베타놀. 전부 얼마나 유명한 회사야? 그런 엄청난 회사들이 덤벼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린 뭐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거지요.”

현대가 주베일 산업항을 수주하고서 비로소 김용제 전무를 현장 소장으로 파견하고 김주신 사업본부장과 그 외 부사장까지 현장에 투입되도록 규모를 키웠지만 수주 초기는 소위 외인부대가 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주영 “아버지가 꿈에 보였어”

-회장님은 큰 공사를 수주하게 될 때는 사전에 꼭 아버님 꿈을 꾸신다고 하셨잖습니까. 주베일 프로젝트 때도 아버님 꿈을 꾸셨습니까?
“하하항, 물론 주베일 산업항 때도 아버지가 꿈에 보였고 그래서 이건 우리가 틀림없이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서 덤빈 거지요. 내가 꿈에서 아버지하고 얘기한다는 소리는 어디 가서 잘 안 하는데 그걸 또 들었구먼, 하하항. 75년, 76년에 10억 달러 공사라고 하면 아주 뭐 세계에서 제일 큰 단일공사고 난공사예요. 그래서 공사를 발주하는 사우디 정부도 그렇고 세계적인 건설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거야. 과연 어떤 회사가 이 공사를 수주할 거냐 해서 말이지. 그런데 우리는 그때만 해도 세계 10위권 건설사에 못 들었으니까 무엇보다 자격을 얻는 게 급선무 아니겠어. 그래가지고 내가 십수 차례나 거길 쫓아다녔어. 그때 우리 대사관에서 노력도 많이 해 줬고 특히 유양수 대사하고 건설관이었던 홍순길 국장이 애를 많이 썼는데, 결국은 입찰 초청을 받아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한 거예요.”

훗날 유양수 전 장관과 홍순길 당시 건설관을 만나 회고담을 들었지만 정 회장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회장님이 동원한 방법이라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그땐 뭐 필사적이었으니까 흥미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한 거예요. 공사도 대단했지만 발주처가 아주 딱 선을 긋고 세계 10위권 건설사에 들지 못하면 입찰도 안 된다고 했지만 기를 써서 입찰 자격을 얻어도 동시에 입찰 보증서를 내밀어야 되는데 그게 또 대한민국 가지고는 안 돼. 신용도가 높은 국가 보증이거나 은행 보증서를 가져가야 얼씬거리면서 귀동냥이라도 할 수 있다 그거야. 건설회사의 힘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그러니 방법이 있어? 16mm 필름에다 현대그룹의 시멘트 공장, 자동차 공장, 조선소, 그런 걸 죄다 찍어서 은행마다 찾아다니며 필름을 돌려서 보여주고 보증서를 끊어 달라고 통사정을 했지. 그럴 땐데 하루는 아버지가 꿈에 보이는 거예요.”

이호 객원기자[leeh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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