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아이들 끼니·미래 돕는 ‘천상 교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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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8일 오전 11시30분 캄보디아 시엠리아프 스라스랑초등학교. 앙코르와트 유적지구 내에 있는 이 학교 급식소 앞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저학년은 앞에, 고학년 학생들은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급식소 안에서는 양선숙(53)씨가 30여 명의 학생들에게 점심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 학교 550여 명의 학생 중 120여 명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해 매일 학교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료급식소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지 못하면 하루에 한끼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양씨가 스라스랑초등학교에 온 것은 지난해 12월17일. 충남 논산에 있는 사찰 지장정사에서 5000여 만원을 들여 이 곳에 무료급식소를 짓고 운영을 맡을 적임자를 찾았다.


이 소식을 들은 양씨는 “내가 운영해보겠다”며 자청했다. 25년 간 교직에 몸담았던 양씨는 급식소 운영 외에도 아이들에게 또 다른 혜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씨는 “더운 나라에 가면 고생한다”는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쳤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현지언어를 배우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6개월 여가 지난 요즘은 아이들과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도다. 급식소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40~50여 명만이 혜택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학생들이 몰리면서 지금은 100명을 훌쩍 넘겼다. 한 달에 급식소 운영비로만 100만 원이 들어간다. 비용은 한국의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아 충당한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 20여 곳에 매월 10㎏의 쌀도 지원한다. 학교에서 돼지도 길러 인근 마을에 분양도 해준다. 급식소에서 일하는 직원도 현지에서 채용했다.

양씨는 자신을 ‘천상 교육자’라고 했다. 학교에서의 교육 외에도 방과 후엔 가정을 방문해 부모들과 상담을 한다. “학교에 빠지지 않도록 해달라” “아이들이 미래를 생각해 학교를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에 불과한 캄보디아는 교육여건이 열악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양씨는 “아이들을 보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수 없다”며 “언젠가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이들은 10년, 20년 뒤에도 지금과 같은 모습일 것”이라며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라 이들이 삶에 대한 의욕을 갖게 하는 데도 목적이 있다”고 했다.

이날 급식소에는 또 한 명의 한국여성이 봉사를 했다. 한 달간의 휴가를 얻어 캄보디아를 여행 중이던 김지현(32·여·경기도 용인시)씨는 우연히 스라스랑초등학교를 찾았다 아이들을 보고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이날까지 나흘째 급식소에서 봉사를 한 김씨는 “힘들지만 아이들이 맛있게 밥을 먹는 것을 보면 힘이 난다”며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 이 곳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무료급식소를 방문한 지장정사 주지 덕산스님은 “2006년부터 스라스랑초등학교와 인근 주민들을 위해 현지교민과 봉사를 해오고 있다”며 “국가와 민족을 떠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이야 말로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참 깨달음의 진리에 가까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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