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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트 문화 재조명 열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륙을 열병처럼 휩쓸고 지나간 비트문화가 최근 미국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난해 5월 뉴욕대학 부근에서 비트문화를 주도했던 소설가 잭캐루악을 기리는 첫 행사가 열린 이래 문화계.출판계에서 앞다퉈소개하고 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지난해 11월 개막해 해를 넘기면서도 관심을 끌고 있는 「비트문화와 뉴아메리카 1950~1965전」(2월4일까지)도 그중 하나다.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 풍경의 사진,조각소품,스케치,끄적거리다만 습작 시(詩)노트,만화쪼가리,콜라주,흑백사진등.이는 중년이상의 미국인을 새삼 향수투성이의 과거로 이끄는 전시품 목록들이다. 언뜻 보기에 그저 흔한 지방학교 동문 전시회처럼 어수선하고 마냥 산만해 보이지만 새해 들어서도 인파가 줄을 잇고 있는이 전시에 대한 관람객의 시선은 사뭇 진지하다.
바로 비트문화의 정신과 흔적속에 전후(戰後)미국 현대미술의 뿌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트문화의 출발지는 50년대 샌프란시스코.뉴욕.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의 카페와 살롱들.전후의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인종차별.반공.종교적 편견에 가득 차있던 미국사회에서 캐루악.윌리엄 버로스.앨런 긴즈버그 같은 소설가.시인.화가 .음악가들이진정한 인간해방을 위해 탈출을 시도한 것이 비트문화의 시초였다.비트란 말은 음악이나 선.마약을 통해 지복(至福.beatitude)에 도달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동양철학.마약.로큰롤.프리섹스 등을 구체적인 탈출구로 삼은 비트문화는 기존의 모든 것을 일단 부정하는 저항에 그 뿌리를 두었다. 저항은 자유만으로 달랠 수 있었고 그것은 반드시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이들 비트 세대의 신 조였다.
전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잡다한 「새로운 것」들은 휘트니미술관 공간속에서 과거로의 여행의 이미지로 뒤바뀌어 전시중이다.전시장 구석에서 흘러나오는 그 시대의 재즈,흑백필름 돌아가는소리들과 어우러져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재촉한다.
당시 각종 환각제복용과 무절제한 생활로 비춰져 비난의 대상이되고 결국 막을 내린 비트문화를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뉴아메리카의 꿈의 한 편린으로 포장해 소개중이다.
그림.조각 전시장은 특히 비트세대의 지향점이 무엇이었던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곳.
잡지에서 여자 누드사진만 오려 작품을 만들었던 브루스 코너의사진 콜라주와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캐루악이 거칠게 그린 「부처」그림, 누드사진등을 대중매체에서 무작위로 오려 이미지를 조합한 제이 드피오의 「어두운 현실에 갈채를」의 콜 라주등이 보는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재료와 기법,솔직한 표현들이었을 이들의 작품은 비트문화가 꿈꿨던 예술세계,공동체의 꿈으로 인도하고 있다. 미국 성조기를 이용한 작품도 눈에 띄는데 미국도 국기에 대한 모독행위를 법으로 다스렸던 시절이 바로 이때였다.
지금이야 『플레이보이』같은 성인잡지의 누드모델이 성조기를 가리개삼아 나올 정도지만 당시에는 국기모독죄에 해당됐다.
남자 성기모양의 조각에 성조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어느 조각가의 사건 전말은 한 세대 앞서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비트문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비트문화를 되돌아보는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시각은 전후 처음으로 펼쳐진 미국식 문화운동에 대한 짙은 향수와 자부심이다.
하지만 전시회 개최에 맞춰 나온 뉴욕 타임스 일요매거진의 한인터뷰는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운동의 뒤안길이 어떤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의 인터뷰대상은 비트 세대 기수였던 인물들의 자식들.
비트문화 주역들이 프리섹스와 환각제에 탐닉하면서 인간해방을 외쳤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정작 교육혜택이나 평범한 가정의 행복조차 맛보지 못한채 가난속에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부친세대를 원망한다는 불행한 얘기였다.
뉴욕지사=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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