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승객 “야호”… 승용차는 “어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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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20분. 본지 기자가 경기도 동탄에서 서울 양재동행 1560번 좌석버스에 올랐다. 운전기사 박정덕(47)씨에게 양재까지 얼마나 걸릴지를 물었다. 그는 “평소 2시간, 많이 막히면 3시간도 걸린다”고 말했다.

“오늘부터 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제가 실시되니 좀 낫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박씨는 덤덤했다. 조금 전 도로상황을 확인했는데 별로 안 달라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버스는 동탄을 출발해 용인, 신갈을 거쳐 오전 8시18분쯤 경부고속도로 기흥IC로 들어섰다. 버스는 서울요금소를 거쳐 반포IC까지 전용차로를 타고 막힘 없이 달렸다. 속도계는 시속 80~100㎞를 유지했다. 간혹 전용차로 위반 승용차들이 끼어들었으나 흐름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반포IC로 빠져나간 시간이 오전 8시45분이었다. 서울요금소를 지나서 꼭 20분 걸렸다.

박씨는 “서울요금소에서 반포IC 사이가 가장 많이 막혀 40~50분 이상 걸리는데 오늘은 20~30분이나 줄었다”며 그때야 미소를 지었다. 용인에서 승차, 강남역에서 내린 김종금(57)씨는 “큰 기대를 안 했는데 평소보다 20여 분 빨리 도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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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30분 기흥IC 입구. 본사 취재차량이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옆에서 진입을 기다리던 임택(25)씨를 만났다. 그는 매일 승용차로 양재동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임씨는 “평소 40분이면 양재동에 도착한다”며 “오늘은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두 차량은 바로 고속도로에 올라 서울로 행했다. 서울톨게이트까지는 제한속도인 100㎞를 유지하며 달릴 수 있었다. 오전 8시 서울요금소를 지나자마자 차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전용차로를 달리는 버스들은 속도를 줄일 필요가 없었다. 일부 승용차가 전용차로로 끼어들기 시작했다.

판교 분기점 인근부터 다시 승용차들이 속력을 냈다. 그것도 잠시, 달래내고개가 가까워지자 다시 정체가 시작됐다. 취재차량은 시속 30㎞가량의 속도로 반포IC까지 겨우 도착했다. 전용차로를 이용하는 버스들은 여전히 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승용차들이 전용차로로 다시 끼어들었다. 버스와 버스 사이에 10여 대의 승용차가 끼어드는 것도 목격됐다.

취재차량이 한남대교에 도착한 뒤 임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보통 40분이면 도착하는데 오늘은 거의 1시간30분 이상 걸렸다”고 말했다.

1일 경부고속도로 평일 버스전용차로제가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한남대교 남단~오산IC 44.8㎞ 구간의 양 방향이 대상이다. 첫날이지만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버스를 탄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승용차를 이용한 사람은 불만을 터뜨렸다. 조무영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 과장은 “버스전용차로의 속도가 평소보다 시속 20㎞ 이상 향상됐다”고 말했다.

수도권 남부에서 서울까지의 버스통행시간도 30분가량 단축됐다. 승용차는 시속 10~20㎞ 이상 속도가 줄었다. 정체구간(시속 30㎞ 이하)도 평소보다 크게 늘었다. 한국도로공사는 오전 8시30분 기준으로 정체구간이 판교분기점~반포IC로 13㎞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전용차로제가 시행되지 않은 지난달 30일에는 달래내고개~서초IC 사이 9㎞였다. 정부는 9월 말까지 시범운영을 하면서 문제점을 보완, 10월부터 평일 버스전용차로제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경부고속도로 한남대교에서 오산IC에 이르는 44.8㎞ 구간에 대한 평일 버스전용차로제 시행 첫날인 1일 반포IC 인근 모습. 버스전용차로는 소통이 원활했으나 일반차로는 밀려든 차량으로 정체를 빚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구조 개선 등 보완책 뒤따라야=이날 정체가 가장 심했던 곳은 양재·서초·반포IC였다. 전용차로를 나와 IC로 빠져나가려는 버스와 승용차가 뒤엉켰기 때문이다. 김시곤 서울산업대 교수는 “서초IC 등 버스 통행이 잦은 곳은 입체화해 승용차 흐름과 섞이지 않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영종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수도권 남부와 서울 강남, 도심을 바로 연결하는 급행광역버스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버스노선도 정거장 수를 줄이고 직선화해 출퇴근 소요시간을 더 줄여줘야만 승용차 이용자를 버스로 유인할 수 있다.

권 박사는 또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은 한남대교 남단 초입의 차로 수가 적어 정체가 생기고, 이 여파가 한남대교와 인근 올림픽대로까지 미친다”며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강갑생·최선욱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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