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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tyle] 참을 수 없는 유혹 ‘도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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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여친이랑 서던메이드에 다녀왔어요. 한자리에 앉아서 매직도넛글레이즈, 시나몬 롤, 스트로베리 아이싱 등 12개를 먹었죠. 달지 않아서 좋았는데 여친은 도넛플랜트가 더 좋다네요. 명동에 2호점 생긴다는데 그야말로 난타전이 벌어질 듯….”(별소년)

“요즘 서울 중심가는 유동인구에 비해 도넛 매장이 너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조만간 조정기를 거쳐 한두 개 업체가 문을 닫을 것이다. 그중 가장 전망이 밝은 곳은 미스터 도넛이다. 장인들이 매장에서 직접 손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도넛을 먹는다. ”(almaviva)

인터넷에서 아이디만으로 통하는 맛집 블로거들의 도넛 시식기다. 갑자기 도넛이 웬 말이냐고 반문하는 당신에게 새삼 3년 만에 2900억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도넛 시장 분석을 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기름에 튀긴 빵인 도넛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고열량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비난은 햄버거에 고스란히 물려준 채.


#햄버거와 도넛, 엇갈린 운명

도넛과 햄버거는 미국에서 보편화된 간편식이다. 주로 프랜차이즈를 통해 확산됐다는 점이 비슷하다. 고열량 식품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공통점이다.

도넛은 돼지기름에 튀긴 밀가루 빵이 기원이다. 네덜란드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들여온 올리코엑(olykoek=oily cake)이다. 반면 햄버거는 18세기 이후 주로 독일계 이민자들이 즐기던 다진 쇠고기가 기원이다. 당시 영양학자들은 이 음식의 영양이 풍부하다는 입장이었다. J H 솔즈베리 같은 이는 하루에 세 번 이상 다진 쇠고기를 먹으라고 권장할 정도였다(존 오저스키 저, 『햄버거의 역사』, 예일대출판부, 2008). 도넛과 달리, 햄버거는 애초 건강식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두 패스트푸드의 운명은 엇갈리고 있다. 웰빙 역풍을 맞은 햄버거는 정크푸드의 대명사로 전락하면서 요즈음 인기가 시들해졌다.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매출은 2002년 1조300억원에서 2007년 8000억원(업계자료 취합)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반면 도넛은 오명을 벗고 스타일 아이콘으로 급부상 중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에서 베이글에 밀려 잠시 시련의 시기를 보냈지만, 2000년대 들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인기몰이의 주인공은 크리스피 크림. 이 회사가 들어온 2005년 이후 국내에서도 도넛 열풍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 후 3년간 국내 도넛 시장은 매년 4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기존의 던킨과 크리스피 크림에 이어 지난해 이후 대기업들이 외국에서 들여온 도넛 프랜차이즈만 해도 미스터도넛, 도넛플랜트 뉴욕시티, 도노스튜디오, 서던메이드 등 4개에 이른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2000년대 초반 커피 전문점 개업 경쟁과 비슷한 상황이 현재 도넛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햄버거와 처지가 바뀐 이유는

도넛과 햄버거의 처지가 뒤바뀐 이유는 뭘까? 아직까지는 분명치 않다. 일단 열량만 따져보자. 도넛은 결코 햄버거에 뒤처지지 않는다. 햄버거의 표준이 된 맥도널드 빅맥 하나의 열량은 590kcal. 도넛은 각 프랜차이즈와 도넛 종류별로 개당 200~400kcal에 해당한다. 여기에 도넛은 한 번에 한 개 이상을 먹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넛이 햄버거보다 더 나은 건강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최근 도넛 업계는 건강에도 신경을 쓰는 추세다. 트랜스지방을 줄이고 유기농 곡물을 쓰고 있다. 그러나 햄버거 업계 역시 비슷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도넛에 입힌 설탕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는 하다. 지난 3월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도넛 사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뇌가 과잉 충동 상태가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우리 뇌가 설탕을 입힌 간식을 좋아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도넛 시장의 주력 상품은 도넛에 설탕 옷을 입힌 글레이즈드 제품이다.

그러나 도넛의 인기는 이런 과학적인 요소와는 무관해 보인다. 그보다는 도넛의 특성과 이미지에 기인한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도넛 업계의 소비자 의식 조사 결과들은 한결같다. 간편하며, 빨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햄버거처럼 바로 사서 먹을 수 있으면서, 얼굴이나 옷에 소스를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도넛을 즐기는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가 설탕 꽈배기를 먹을 때 썼던 포크나 나이프를 쓰지 않는다. 냅킨으로 도넛 끝을 감싸 쥐고 요령 있게 먹어치운다. 식사 대용품이나 간식거리로서는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던킨도너츠가 최근 자사 소비자 480명을 대상으로 ‘왜 도넛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1%가 ‘간편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빨리 먹을 수 있어서’라는 응답도 23%나 됐다.

도넛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 미국식 커피 문화다. 고급 커피 전문점이 늘면서 커피 소비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커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간식이라는 점에서, 도넛 소비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넛 프랜차이즈가 커피 전문점의 역할까지 하기 시작했다. 정연강 에이킹창업연구소 대표는 “1~2년 전부터 도넛 프랜차이즈는 예전의 단순한 테이크아웃 매장 형태에서 벗어나 커피 전문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때 도넛을 사려고 들르는 사람 외에는 없었던 도넛 프랜차이즈에서 도넛과 커피를 즐기는 젊은 고객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 도넛 프랜차이즈의 절대 강자인 던킨도너츠도 커피의 품질을 높이고, 커피 광고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도넛과 커피의 보완적 성격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미디어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도넛을 ‘참을 수 없는 유혹’으로 규정하면서, 도넛은 일종의 트렌드가 됐다.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의 경우 특정 도넛을 ‘신의 선물’로 일컬을 정도로 유명한 예찬론자다.

다양한 도넛 업체와 전문화된 메뉴가 등장한 것도 도넛을 트렌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다. 6개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선보이는 도넛은 모양만 흡사할 뿐 재료나 제조 방법, 그리고 맛이 제각각이다. 따라서 개성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맛을 고를 수 있다. 이때 소비자는 술이나 자동차 같은 고급 기호품을 살 때와 비슷해진다. 단순히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상징하는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이여영 기자

도넛파티셰가 말하는 브랜드별 특징

◇“트랜스지방 0% 수제품”=서던메이드 도넛의 가장 큰 특징은 ‘프리믹스’다. 프리믹스란, 밀가루와 갖가지 재료를 섞어 만든 도넛 전용 파우더로, 도넛 기술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프리믹스의 장점은 트랜스지방이 0%라는 것. 튀기는 기름뿐 아니라 반죽 자체에서 트랜스지방을 없앤 도넛은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작업은 기계없이 손으로 진행한다. 김도훈 <서던메이드 교육 과장>

◇“유기농 재료 사용한 빅사이즈”=우리 도넛은 크기부터 특별하다. 일반 도넛보다 1.6배 정도 큰 사이즈다. “인체에 유해한 것은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는 창업자 마크 이즈리얼의 이념에 따라 고단백 밀가루, 유기농 설탕, 유기농 과일 소스만 사용한다.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계란도 일절 넣지 않는다. 유기농 재료만을 이용해 다른 도넛보다 소화가 잘되며 달지 않고 쫄깃하다. 박진용 <도넛플랜트 뉴욕시티 도넛파티셰>

◇“갓 나온 도넛을 바로 입 안으로”=‘따뜻한 도넛 체험’이 다른 브랜드와 차별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가게 안에서 도넛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눈으로 보고, 바로 나온 완성된 도넛을 맛볼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전 매장에서 해바라기유로 기름을 교체해 트랜스지방은 물론 포화 지방산 함량을 낮췄다. 이와 함께 신제품 도넛에는 시럽을 묻히지 않아 당도를 줄이는 한편, 오렌지 껍질 및 호두 등의 천연 재료를 넣어 웰빙 시대에 맞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박경희 <크리스피 크림 계장>

◇“신선함이 생명이다”=모든 제품 당일 제조, 8~10시간 이후 폐기를 원칙으로 한다. 더욱이 일본과 한국에 위치한 도넛 아카데미를 졸업한 도넛 장인이 직접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부드러움과 촉촉함에 쫄깃함까지 느낄 수 있다. 이스트 발효에서 반죽, 튀김까지 한 번에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재료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입한 1등급 상품만 사용한다.

이진호 <미스터도넛 도넛마스터>

◇“한국인 입맛에 맞는 자체 메뉴 연구”=도넛을 출시할 때 항상 계절과 시기를 생각한다. 여름에는 냉장 보관해도 딱딱해지지 않고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질감을 만들어 낸다. 올 여름 나온 제품들은 청량감을 주고자 노력했다. 재료는 망고와 멜론 같은 천연 원료, 기름은 대두유에 해바라기유를 섞어 쓴다. 떡처럼 쫄깃한 식감과 곡물을 첨가한 도넛류는 국내에서만 선보이고 있는 독특한 메뉴다.

박문형<던킨도너츠 상품담당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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