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04. 통도사 큰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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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우울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위해 헤어스타일을 파격적으로 바꿨다.

갱년기 증후군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마음고생을 하던 2년여 동안 나는 어떻게든 우울함과 허무함을 이겨보려고 노력했다. 유명 스님과 신부를 찾아 다니며 왜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지, 인생이 왜 이리 덧없고 허무한지 묻기도 여러 번이었다. 불교 신자에게는 고승에게 데려다 달라고도 해보았고, 가톨릭 신자에게는 신부나 수녀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평소 이해인 수녀의 시를 즐겨 읽었던 나는 그 무렵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 있어 직접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그가 내 편지를 받아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법정 스님의 책은 거의 다 읽었다. 스님을 만나 단 몇 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눈다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깊은 산속에 오두막을 짓고 수십 년간 침묵 수행을 한다는 스님을 만날 길이 없었다. 지금도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법정 스님이다. 혹시라도 만나주기만 한다면, 아니 어디 있는지 알려주기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찾아갈 생각이다.

한번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지인의 안내로 양산 통도사에 간 적이 있다. 주지 스님을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지 스님이 “마침 큰스님이 와 계신데 만나 보겠느냐”고 했다. 지인이 귓속말로 “전직 대통령 아무개도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결국 못 만나고 돌아간 유명한 스님”이라고 했다.

나는 주지 스님을 따라 큰스님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 수 차례 절에 와서도 그저 합장을 하고 목례를 하는 것으로만 예를 표했던 나는 큰스님께는 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절을 하려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엉거주춤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됐다. 긴 다리를 어설프게 굽히고는 엉덩이를 천장 쪽으로 들어 올린 채 마치 어린아이가 절하는 듯한 자세로 절을 했다.

다른 신도들처럼 절을 세 번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서 허리를 굽히는데 “그만 됐습니다. 편히 앉으십시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속으로 ‘휴~ 다행이다’ 하고는 허리를 폈다. 내게 편히 앉으라 말한 분이 주지 스님인지 큰스님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을 한 큰스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학문과 인격이 높은 선비의 얼굴 그 자체였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고, 자연스레 무릎이 꿇어졌다. 방바닥에 앉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절에 가면 늘 다리를 이리저리 포개고 앉느라 고생했지만 그분 앞에서만큼은 무릎을 꿇고 앉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외국 국빈이 올 때마다 청와대 공연을 하곤 했다. 그 엄혹한 시절,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히 다리를 꼬고 앉았던 패티 김이었는데 말이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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