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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제갈량도 푹 빠진 ‘매력남’ 주유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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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 영화는 적어도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적벽대전의 숱한 영웅 가운데 손권의 책사(策士)이자 군사(軍師)였던 주유를 핵심으로 부각시킨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의 책사였던 제갈량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인물이다.

‘적벽대전’의 주유(량차오웨이)는 요즘 표현으로 ‘완소’(완전소중)급 매력남이다. 살벌한 전쟁을 이끄는 전사이면서도, 목동의 연주를 듣고 다가가 이내 피리의 음정을 조절해줄 만큼 음악에 뛰어나다. 아내 소교(린즈링)에게도 지극히 다정다감한데, 심지어 그 아내는 조조마저 탐을 내는 절세미인이니 뭐 하나 부족한 구석이 없는 남자다. 전투가 벌어지면 높은 곳에서 관망하며 지휘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직접 말을 몰고 뛰어들어 실력을 발휘한다. 한마디로,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겸비한 완벽남이다.

영화’적벽대전’은 오나라 손권의 책사이자 군사였던 주유에 초점을 맞춘다. 유비의 장수 중에서는 거칠고 용감한 조자룡의 매력이 부각된다. [사진=쇼박스 제공]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주유의 면모를 그의 경쟁자이기도 한 제갈량(진청위)의 눈을 통해 묘사하는 점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군대가 조조에게 밀려 퇴각한 뒤, ‘세 치 혀’만으로 무장한 채 손권의 오나라를 찾아간다. 연합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 넘게 지나야 주유가 등장하는데, 그 첫 등장이 정면 클로즈업이 아니라는 게 특이하다. 병사들과 훈련하는 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보는 제갈량의 시선을 통해 주유의 남다른 면모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두 남자 사이에 경쟁의식도 번득이지만,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나이로는 선배 격인 주유를 바라보는 제갈량의 시선은 이내 존경과 흠모로 바뀌어간다. 두 남자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흡사 남녀 간의 애정만큼이나 농밀하다. 서로 다른 주군을 섬기는 두 남자가 이처럼 진한 감정에 빠져드는 모습은 우위썬 감독의 홍콩시절 영화 ‘첩혈쌍웅’에서 킬러와 형사, 즉 적대적인 두 남자가 교감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서양평론가들이 동성애 코드로 해석하기도 했던 대목이다.

제갈량 역시 기존의 이미지를 넘어 주유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뛰어난 지략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선생’이었을 것 같지만, 이 영화는 그가 당시 20대 후반의 젊은이였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손권의 여동생이자 무예에 뛰어난 공주 손상향(자오웨이)의 말괄량이 짓을 보고 웃음을 참느라 킥킥댈 때는 눈가에 장난기가 번득인다. 천성이 밝고 쾌활한 현대의 젊은이처럼 친근하다.

‘적벽대전’은 이처럼 두 매력남의 교감을 중심으로, 저마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영웅들이 드림팀을 이루는 모습이 핵심이다. 유비·관우·장비는 영화 속 비중으로는 조연이지만,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 특징이 효과적으로 부각된다. 유비의 장수 중에 특히 조자룡(후쥔)의 거칠고 용감무쌍한 매력이 빛난다.

주유·제갈량과 함께 이번 영화가 주목하는 또 다른 젊은이는 손권(장첸)이다. 26세의 젊은 왕인 손권은 죽은 아버지·형만큼 이뤄낸 것이 없다는 자괴감과 늙은 신하들에게 휘둘리며 억압됐던 내면을 조조와 맞서기로 결단하면서 비로소 풀어내기 시작한다. 적장 조조(장펑이)는 아직까지는 전투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채 여유로운 자신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전장에서도 여색을 즐기고, 투항한 적의 장수들을 중용한다.

액션만으로 평가하자면, ‘적벽대전’은 최근 선보인 중국시대극 가운데 최고라고 꼽기는 어렵다. 특히 이 영화의 첫 번째 액션은 내용이 암만 유비군이 패해 도망치는 장판교 싸움이라고는 해도, 이렇다 할 스타일을 찾기 힘들다. 현대물에서는 뛰어난 개인기 액션을 연출했던 우위썬 감독이지만, 수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된 대규모 액션은 감당하기 버거운 듯한 인상이다.

후반부 제갈량과 주유가 손잡고 구궁팔괘진, 즉 거북이 등 모양의 진법을 구사해 육상에서 조조의 군대를 물리치는 액션은 한결 볼 만하다. 매스게임이라도 하듯 진열을 단계적으로 바꿔가며 적군을 독 안의 쥐로 몰아가는 장면과 관우·장비·조자룡 등 장수들이 저마다 일당백의 특기를 한껏 선보이는 장면이 교차돼 대작에 기대할 법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적벽대전’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매끈한 맛은 덜하되, 두 남자 사이의 의리·우정이라는 주제를 비롯해 우위썬 영화 특유의 쾌감이 뚜렷하다. 그의 서명 격인 비둘기가 여기도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제법 역할이 확실하다. 1부 막판, 주유와 담소를 나누던 제갈량은 돌보던 흰 비둘기를 강 건너 조조의 진영으로 날려보낸다. 비둘기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을 빌려, 축구시합을 벌이면서 다가올 전투를 여유롭게 준비 중인 조조의 대군을 보여주며 2부(연말 개봉 예정)의 거대한 액션을 예고한다. 15세 관람가.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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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처음 만난 그날 저녁, 주유는 거문고 연주를 제안한다. 두 남자의 격렬한 탄주에는 서로의 됨됨이를 가늠하려는 긴장이 흐른다. 기가 막힌 것은 연주가 끝난 뒤, 대사로 풀어내는 그 해석이다. 거문고를 통해 제갈량은 조조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제안했고, 주유는 “그러마”라고 답을 했다나. 지음(知音)과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주유’로 변신 량차오웨이
“검 휘두르며 노래하는 장면 힘들어 포기할 뻔”

량차오웨이(46·사진)는 음험한 정보장교를 연기했던 전작 ‘색, 계’보다 한결 젊어진 모습으로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30대 초반의 매력남 주유로 손색이 없었다. 오랜 연인이자 배우인 류자링과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캐스팅에 곡절이 많았다. 당초 저우룬파가 주유를 할 뻔했다. 당신도 처음에는 제갈량을 제안 받았다 거절했었는데.

“처음에 거절한 것은 리안 감독의 ‘색, 계’를 찍으면서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곧바로 영화를 찍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마침 몸이 좋아졌다. 영화란 나에게 인연을 만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측하지 못한 인연을 만나 인생이 바뀌기도 하듯 말이다. 지금까지 20여 년 연기를 하면서 다음에는 이걸 해야지 하고 계획한 적이 없다. 어떤 인연이 찾아올지, 운명에 맡긴다.”

-기존 삼국지와 주유에 대한 해석이 사뭇 다르다.

“주유는 낭만적이고, 도량이 넓고, 머리도 좋은 사람이다. 촬영 막판에 감독에게 그랬다. 내가 지금까지 연기한 주유는 다름 아닌 감독님 같다고. 주유는 우위썬 감독이 지향하는 완벽한 영웅이다. 감독 역시 현장에서 모든 스태프한테 두루 잘 하는 게 너무 존경스러웠다.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완벽한 사람, 가장 착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주유 같은 사람이다. 그 이상의 표현이 없다.”

-그렇게 완벽한 남자를 연기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연습을 거듭했지만,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포기하고 싶었던 장면이 있다. 이번 1편이 아니라 2편에 나올 텐데, 주유가 검을 휘두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중국 고시에 곡을 붙인 느린 노래를 하면서 빠른 액션을 해야 했다. 감독이 처음에는 노래도 내가 직접 불러야 한다고 했는데, 현장에서 들려주는 노래에 입만 벙긋거리는 것으로 결국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적벽대전’이 기존의 중국시대극과 가장 다른 점이라면.

“보통 삼국지라면 계략이나 모략을 많이 떠올린다. ‘적벽대전’은 그렇지 않다. 단결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이 하나도 없다. 모든 캐릭터에 다 이유가 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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