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미국 집단소송제 개정 교훈 삼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집단소송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소송의 남용 가능성이다. 최근 미국에서 집단소송 개선법안(Class Action Fairness Act)을 공식 발효시킨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입법 노력의 일환이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법안 서명을 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쓰레기 같은 소송에 대응하느라 매년 2400억 달러의 비용을 썼지만 미국 기업은 물론 노동자.소비자 모두에게 불이익을 줘왔다"고 밝힌 것은 곰곰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집단소송 제도는 미국이 만들어낸 미국의 발명품이다. 이전까지 판례를 통해 인정돼 오던 집단소송은 1938년 미연방민사소송규칙 제23조에 채택돼 성문화됐고, 66년 전면적으로 개정된 바 있다. 비단 증권 불공정거래 사건뿐만 아니라 환경 및 공해사건, 소비자 피해사건 등의 경우에서처럼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이고 전체 피해 규모는 막대하지만 각 피해자가 본 피해는 소액인 경우, 또 소송비용.절차 등이 복잡하고 과다하며 개별적으로 피해구제를 하기 어려운 때 집단소송은 그 피해 구제에 매우 유용한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취지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운영이 잘못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당초 해결하려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기도 한다. 집단소송도 그렇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블록버스터 사건이다. 한 고객이 비디오 반납기일을 지키지 않을 경우 추가 요금이 부과되는 것이 부당하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법원의 판결이 아닌 당사자 화해로 종결됐고, 추가 요금을 낸 고객들은 1인당 20달러 상당의 무료 비디오 대여 쿠폰과 1달러짜리 물품 할인구매 쿠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쿠폰을 받아간 고객은 1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담당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925만 달러의 보수를 챙겼다. 이 사례는 미국 집단소송 제도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예로서는 매우 특이하고 또 극단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의 집단소송이 남소된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집단소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개정된 법안의 주요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원고의 수가 일정 수를 넘고 피해 규모가 500만 달러 이상이면 주 법원이 아니라 연방법원에서 이를 관할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이 현금이 아닌 할인권 등의 방식으로 보상받을 경우 변호사의 보수를 법원이 통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절차를 까다롭게 하고 소송에 관여하는 변호사들의 인센티브를 제약함으로써 남소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정 법안이 소비자들의 권리 구제를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사법제도가 남용되면 기업들의 불필요한 부담은 그만큼 늘어나고 이는 결과적으로 소비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그 혜택은 사회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은 일부 세력들에 돌아간다. 따라서 이번 개정 법안은 제도의 남용을 제한해 기업은 물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한국도 올해부터 집단소송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스웨덴.캐나다.브라질 등도 미국을 모델로 한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이는 '판도라의 상자'를 무모하게 열어 지금까지 미국이 겪었던 고통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상거래에 관한 한 국경의 구분은 없어지고 있다. 기업의 투명성과 소비자 보호, 이를 통해 상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입법 활동의 필요성은 모든 나라에서 공히 제기되고 있는 바다. 한국은 미국의 집단소송 제도를 모델로 삼았지만, 그런 한국법의 내용을 향후 미국이 법을 개정하면서 모델로 삼을 수도 있다. 한국은 분식회계에 대한 집단소송을 2년간 유예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확정했고, 이에 따라 올해부터 증권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82개 기업을 최근 확정했다. 제도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려는 한국인들의 노력과 결과는 지금 친기업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는 미국뿐 아니라 모든 세계인의 관심사라 할 것이다.

존 퀸 퀸 에마누엘(미국 로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