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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고양이 사료는 어떻게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나?

중앙일보

입력

우선 용어부터 정리해보자. 참치와 참다랑어 가운데 뭐가 맞을까? 아니면 둘 다 옳은가? 견해는 엇갈린다. 그러나 참다랑어가 맞다는 것이 정설이다. 순우리말은 참다랭이. 참치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속설이 하나 있다. 어시장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동행한 어류 전문가에게 참다랑어의 이름을 물었다. 당황한 이 전문가가 ‘참치’라고 둘러댄 후 그 말이 널리 쓰이게 됐다는 얘기다. 어쨌든 우리가 아는 푸른 등과 하얀 배를 가진 커다란 생선의 정식 명칭은 참다랑어다.

한 때 참다랑어에 관한 일본 프로그램에 푹 빠진 적이 있다. ‘일본인과 마구로(참다랑어)’ 정도의 제목이 아니었던가 싶다. 케이블 채널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참다랑어나 참다랑어 시장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부는 일본 근해에서 소규모 배로 참치 낚시를 했다. 그것은 목숨을 건 싸움에 가까웠다. 그로서는 그럴 만 했다. 참다랑어 가운데서도 최고로 치는 일본 근해의 혼마구로는 일확천금의 기회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 양식 참다랑어로 일본 시장을 공략하려는 한 수입업자의 고군분투기도 있었다. 그의 싸움터는 세계 최대의 수산물 경매 시장인 도쿄의 쓰키지 시장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유별난 참다랑어 사랑에 대해 알게 됐다. 어설픈 냉동 참치를 가끔씩 맛볼 뿐인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집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참다랑어를 둘러싼 엄청난 경쟁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참다랑어가 주재료로 쓰이는 스시가 세계인의 음식이 된 과정을 생각해보라. 세계 곳곳에서 나는 참다랑어가 일본으로 몰려든다. 그리고 일본에서 탄생한 스시가 전세계로 퍼져 나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이런 마당에 참다랑어를 둘러싼 집착과 경쟁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나는, 참치와 스시야말로 오늘날 세계화(globalization)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재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몇 달 전 비슷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책을 한 권, 우연찮게 발견했다. 올해 초 국내에서 번역돼 나온 <스시 이코노미-스시의 세계화로 배우는 글로벌 경제>(김원옥 옮김, 사샤 이이센버그 지음, 해냄)라는 책이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참다랑어가 잡히고, 스시가 팔리는 세계 전역을 뒤져 취재한 내용이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에서 고양이 사료에 불과했던 생선이, 어떻게 오늘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그 과정은 이 시기 진행됐던 세계화의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한 설명은 참신하며 낯설다. 굳이 성급한 일반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참신하다. 그저 담담하게 세계의 참다랑어가 일본으로 몰려들고, 스시가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서술할 뿐이다. 아마도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세계화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참다랑어와 스시에 대한 모르는 사실들을 엄청나게 많이 나열했다는 점 때문에 낯설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현대적 냉동 기술과 JAL(일본항공)의 필사적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도 참다랑어의 항공 운송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가? 방랑벽을 가진 한 청년이 미국의 LA에서 스시집을 열어 대성공을 거두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스시 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은? 더 나아가 통일교가 미국에 진출해 자리를 잡기 위해 처음 했던 사업이 참다랑어 사업이라는 역사는 또 어떤가?

물론 우리가 아는 내용들도 있기는 하다. 스시가 찹쌀밥을 넣어 삭힌 생선에서 비롯됐다는 상식이라든가 전세계 참다랑어의 집결지인 쓰끼지 시장의 새벽 풍경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참다랑어와 스시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건,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일상적 소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라는 점 때문에 충격을 받은 책으로는, 1997년의 <연필>(홍성림 옮김,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지호) 이후 이 책이 처음이었다(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연필에 대한 소소한 지식이 무려 5백40여쪽에 걸쳐 펼쳐진다).

그렇다면 참다랑어와 스시라는 소재를 통해 들여다 본 세계화는 어떤가? 불행히도 이 책은 이 부분에 대해 거의 할애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결론 격에 해당하는 부분이 누락된 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선 세계화는 집념에 찬 기업이나 개인과 과학기술, 그리고 행운의 산물이다. 세계화가 진전되는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이다. 새로운 사업 기회를 노리던 JAL의 오카자키 아키라는 캐나다산 참치를 비행기로 공수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몇 년간 그 아이디어에 매달린 결과 오늘날과 같은 참치 항공 운송 시대를 열었다. 동시에 과학기술과 행운이 따라줘야 한다. 이 시기 냉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지 않았다면, 아키라의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더욱이 원양어선이 먼 바다로 나가 수확하는 참다랑어 대량 공급 시대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전세계의 트렌디한 도시에서 신선한 스시가 최상류층의 인기 메뉴가 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세계화의 요인이 무엇이든, 일단 세계화 하면 이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도 참다랑어와 스시를 통해 알 수 있다. 일단 일본인들이 세계의 참다랑어를 맛보고, 세계인들이 스시를 맛본 이상 이를 포기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화론자인 미국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언급한 ‘황금아치(Golden Arch·미국의 패스트푸드인 맥도널드의 상징) 이론’이나 델(Dell·미국의 주문형 컴퓨터 생산업체)의 충돌예방 이론‘ 그대로다(두 이론과 관련해서는 프리드먼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와 <세상은 평평하다>를 참조할 것). 일단 패스트푸드점의 편리함에 길들여지거나 국제 분업체계의 수익성에 익숙해지면, 상황을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세계화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며, 선택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당신이 참다랑어 회를 한 젓갈 집어 들거나 스시를 한 덩이 베어 문 순간 당신은 이미 전세계와 연결돼 있다. 미국 보스턴 앞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치던 그 참치는, 24시간 냉동 화물 상태로 비행해, 일본의 쓰키지를 거쳐 당신한테 닿았다. 그 모든 번거로운 과정이 싫더라도 참치나 스시를 먹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반세계화 구호를 담은 피켓을 들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장관회의장 부근까지 갈 수는 있다. 그러나 맛있는 참치나 스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전세계와의 연계를 직접적으로 막을 도리는 없다.

김방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