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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법은 누구의 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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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마 전 40대 청각장애인이 벌금 7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와 함께 떡볶이.어묵 등을 팔며 네 식구의 생계를 근근이 이어오던 그는 지난해 10월 불법 노점행위로 적발돼 벌금을 부과받았다. 그는 10평 남짓한 원룸의 월세 30만원도 갚지 못한 상황에서 법정에 출석하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는 법원의 소환장을 받고 고민하다 결국 삶의 끈을 놓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 우리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곤궁하게 살아온 그의 처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죽어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법이 무엇이고, 법은 누구의 편이냐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그에게 법은 보호장치가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물론 불법 행위를 했다면 누구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법치주의다. 그렇다고 재산형을 물리면서 기업 총수와 노점상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이를 균형잡힌 법집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직된 법집행보다 때론 유연성이 필요한 이유다. 그가 불법 행위로 적발돼 벌금 납부를 독촉받기까진 몇 단계를 거쳤다. 행정관청이 불법 노점을 고발하자 수사기관은 이를 조사해 벌금을 부과했고, 그가 벌금을 내지 않아 법원이 소환장을 보낸 것이다. 행정관청이나 수사기관에서 그의 형편을 세심하게 살펴 벌금 납부를 유예해 주는 등 온정을 베풀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법원과 검찰의 국회의원 '봐주기' 논란이 제기됐다. 법원이 선거사건 재판에서 의원직 유지가 가능한 벌금 80만원을 잇따라 선고하고, 검찰이 1억원의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난 어느 여당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지난해 17대 총선 직전 선거사건 전담 재판장 회의를 열어 벌금 80만~90만원은 적절한 양형(量刑)이 아니라고 뜻을 모았다. 거기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던 과거 사법부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잡겠다는 다짐도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재판 결과를 보면 그런 다짐이 무색할 정도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47명 가운데 2심까지 의원직을 잃게 되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0명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며칠 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판결문을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했다. 1975년 선고가 있은 지 꼭 30년 만의 일이다. 한꺼번에 8명의 사형을 확정한 사건을 무슨 영문인지 판례공보에 올리지 않았다. 이제 와서 판결문이 법률 전문지에 실린 적이 있다고 발뺌하려는가. 피고인들의 호소보다는 권력의 편에 섰던 부끄러운 과거를 묻어두고 싶어 그런 것이라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표적인 인권변호사로 지난해 작고한 유현석 변호사는 법조인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덕목으로 양심.지식.용기를 꼽았다고 한다. 그는 이 중에서도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후배들에게 강조했다. 천부적인 양심에 차이를 두기 어렵고, 지식 역시 정보화로 인해 개인차가 없어져 결국 용기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가 진정 거듭나려면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려 할 게 아니라 이를 솔직히 고백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 없이 어떻게 강자에 맞설 수 있겠는가.

어제는 법의 날이었다. 미국의 법학자 러셀 갤러웨이는 그의 저서 '법은 누구 편인가'(안경환 역)에서 미 연방대법원이 시대에 따라 부자의 시녀, 가난한 사람의 대변인, 이익집단 간의 조정자 등 서로 다른 세 개의 얼굴을 가졌던 기관이라고 분석했다. 2005년 우리 사법부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신성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