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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비빔밥에도 고기 숨어 있어 처음엔 고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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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22면

-서울 생활 두 달 반이 지났다.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는 어땠나.
“처음엔 힘들었다. 음식 이름도 모르고, 채식 메뉴라 생각하고 주문해도 항상 고기가 숨어 있어 힘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채비빔밥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처음 나간 날, 동료들이 함께 밥을 먹자고 해 따라 나갔다. 그땐 내가 채식주의자란 말을 하지 않았다. ‘메뉴 보고 고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한꺼번에 식사가 나왔는데, 작은 닭 한 마리가 인삼을 옆에 끼고 예쁘게 다리를 꼬고 있었다. 속으로 ‘오 노(No)’라고 외쳤다.

중앙데일리 인턴기자 그랜도스의 ‘채식 서울’

삼계탕 전문점이었다. 그 뒤부터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식사를 하게 되면 채식을 한다고 먼저 말한다. 하지만 삼계탕 집에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깍두기와 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번은 저녁 때였는데 채식 메뉴가 있는 음식점을 찾아 헤매다 간판에 야채 상차림 사진이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갔더니 ‘점심 특선’이었다. 결국 삼겹살을 주문했다. 그래도 만족한다. 내가 좋아하는 쌈장에 상추·깻잎이 반찬으로 나와 반찬만 먹고 돈은 다 냈어도 손해 봤다는 생각은 안 든다.”

-결론은 한국에서 먹고 살아가기가 괜찮다는 말로 들리는데.
“지금은 아주 만족한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땐 ‘단백질 공급식품을 찾을 수 없어서 을 위해 생선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이 채식주의자에겐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지하철 역이나 길가에서 파는 떡과 김밥을 사 먹어 봤다. 채식으로 쉽게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것은 채식주의자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다. 스웨덴의 경우 시골 길가 음식은 대부분 빵 속에 소시지를 넣은 것이다. 또 한국에는 우유나 치즈·계란까지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인(vegan)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두부나 콩자반·콩전은 완벽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비타민 B가 풍부한 미역·김도 흔하게 먹을 수 있다. 인사동에 있는 사찰음식점은 완전 채식인에게 최고의 메뉴다.”

-몸맵시가 날렵하다. 혹시 체형 관리를 위해 채식을 하나.
“편견·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채식을 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체형에 변화가 없다. 친구 중엔 완전 채식인도 꽤 있는데 깡마른 친구도, 뚱뚱한 친구도 있다. 뭘 어떻게 얼마나 먹느냐의 차이가 체형을 결정하는 것 같다.”

-채식을 하게 된 계기는.
“열두 살 때였다. 가족과 차를 타고 유럽 여행을 다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을 보게 됐다. 돼지들이 창살 속에 꽉 끼인 채로 숨을 쉬려고 코를 내밀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때부터다. 유럽 축산업 사정을 알게 됐다. 실내 축사에서 몰아서 키우고, 먼 곳으로 데려가 도살한 뒤 다시 시장에 들여왔다. 그 산업 고리에 내가 일조하는 게 싫었다. 지금은 유럽의 농장들이 친환경적 시스템으로 대부분 바뀌었지만 육류 생산·유통·소비에는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지금은 환경적인 이유로 채식을 한다.”

-거침없이 쌈장을 싸 먹는 모습을 보면 한국인이 신기하게 보지 않나
“사실 무안할 때가 많다. 사람들은 내가 채식주의자란 사실에 놀라 ‘고기 안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 나는 ‘한국엔 좋은 음식이 너무 많다’고 답한다. 또 내가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거나, 된장찌개 같은 것을 잘 먹는 것을 보고도 놀란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괜찮냐(Are you OK?)’다. 한번은 아차산 휴게소에서 열무김치 비빔밥을 먹고 있는데, 중년 아주머니 세 분이 다가왔다.

‘어머, 어머’ 하면서 주변을 한참 서성이더니 한국말로 계속 질문해댔다. ‘어머’란 감탄사 말고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김치, 좋아해요’라고 했다.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라. 선의란 것을 아니까 개의치 않는다. 아직 한국에는 맛보지 못한 채식 메뉴들이 더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을 알아가는 기쁨 이상의 기쁨을 채식 메뉴 발굴에서 찾고 있다.”

스웨덴 출신의 그랜도스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평화갈등학을 전공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인턴으로 활동하는 등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하고 문화를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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