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前 외환위기를 생각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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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02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요즘 우리 경제를 보면 1997∼98년 외환위기 때로 시계추를 돌려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경상수지가 10년 흑자 시대를 마감하고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올 한 해 적자가 1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달 6% 선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98년(7.5%) 이후 최고치다.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계속 발을 빼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주식 순매도액이 5조원에 육박한다. 그 돈을 달러로 바꿔 가다 보니 원화 환율은 연일 상승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은 보유 외환을 풀어 환율 방어전을 펼친다.

나라 밖 사정도 외환위기 때를 떠올리게 한다. 11년 전 한국에 앞서 위기를 맞았던 동남아 국가들이 지금 풍전등화다.

베트남과 태국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어딘가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주변국들도 온전치 못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된다.

우리 사회의 갈등상도 비슷하다. 97년 한보·기아 사태의 처리와 금융개혁 작업이 반발 세력의 저항에 옴짝 못했듯이,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에 편승한 반개혁 세력의 저항 앞에 속수무책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27일 한국이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도하면서 “선원들이 선장(대통령)을 바다로 밀어내려 하는 와중에 선장은 폭풍우와 싸워야 하는 형국”이라고 묘사했다.

10년 전 외환위기는 차라리 지금보다 나은 측면이 있었다. 미국 경제가 호황이었고 중국 시장이 급팽창했다. 국제 유가도 15달러 선에 불과했다.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국민적 의지도 충만했다. 국가의 리더십도 확고했다. 여야는 손을 잡고 민생정치를 펼쳤다. 그 덕분에 한국 경제는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 경제호는 침몰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따지기엔 상황이 너무 절박하다.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배의 침몰을 막아내야 한다. 비상한 위기의식으로 유가 140달러 시대를 극복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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