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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미 대북 협상파, 강경 체니 사단에 승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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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기 하루 전인 25일(현지시간),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워싱턴에서 외교 전문가들과 비공개 모임을 열었다. 30분간 막힘 없이 질문에 답변하던 체니는 스티븐 클레먼스 뉴아메리카재단 연구원의 질문에 얼굴이 굳어졌다. 클레먼스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체니는 한동안 클레먼스를 뚫어질 듯 바라보다 차갑게 말했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관심사는 국무부에나 가서 알아봐라.” 그러더니 “답변을 그만하겠다”며 휑하니 떠나버렸다.

뉴욕 타임스(NYT) 인터넷판은 27일 이런 내용을 전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것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북핵 협상 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체니 사단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뜻한다”고 보도했다.

NYT는 “부통령실은 북핵 협상의 성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북한과의 협상은 여전히 부시 행정부를 분열시키는 요인”이라고 전했다. 국무부 협상팀은 북한이 26일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기 전까지 한편으로 북한을 상대하고, 다른 편으로는 워싱턴의 보수파를 상대하느라 파김치가 됐다.

보수파는 북한이 영변 원자로 폭파 비용으로 500만 달러(약 52억원)를 요구해 미국이 250만 달러를 건넨 데 대해서도 “지나치게 많이 줬다”며 비판했다. 일리나 로스레티넨(공화당) 하원의원은 “냉각탑 폭파는 빈 껍질을 없애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정말 애통한 일이다. 부시는 라이스가 ‘북한을 설득해 핵무기들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고 한 말을 믿는 것 같은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청소부들(냉각탑 폭파 뒤 뒤치다꺼리를 하는 국무부의 협상파 지칭)에게 끌려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기자들에게 “미 정부는 과거와 같은 ‘모 아니면 도(all-or-nothing)’식 전략 대신 북한과의 ‘점진적 접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는 “부시 정부가 처음부터 전임 빌 클린턴 정부의 외교적 노선을 계승했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칼로스 퍼스퀄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 담당 국장은 “2002년 부시 정부가 1994년의 북·미 제네바합의를 뒤집자 북한은 영변에서 국제 핵사찰단을 추방하고, 핵무기 제조에 나섰다”고 밝혔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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