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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싸움의 정석’을 알아야 타결 서명할 때 즐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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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트럼프처럼 협상하라
조지 로스 지음, 김미정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1만8000원

협상천재
디맥 맬호트라, 맥스 베이저먼 지음
안진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1만5000원

정치나 외교, 비즈니스의 세계는 협상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부가 여기서 갈라지기 때문이다. 전략과 전술이 승부를 가름하는 것은 무기로 하는 전쟁이나 협상이나 매한가지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 보다 많은 걸 얻어내는 전략과 전술을 알아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인생사 역시 협상에 좌우되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곧 이해관계라서다. <편집자>

중국 베이징에 명품 짝퉁시장이 있다. 몇 년 전 이곳의 한 상점을 찾아 시계를 고른 후 나는 주인이 제시하는 가격의 10분의 1을 주겠다며 대폭 깎았다. 사전에 여행가이드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은 가격을 내려주다가 어느 선까지 내려오자 이게 마지노선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그럼 안 사겠다”며 돌아서자 주인은 그런 나를 다시 불러 더 깎아줬다. 2년 전 이 시장을 다시 찾았다. 10분의 1 전략을 폈지만 예전과 달리 주인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돌아서도 붙잡지 않았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행 중 한 명은 아주 싼값에 시계를 샀다. 그는 처음에 상점의 젊은 여자 주인에게 ‘예쁘다’는 말을 붙였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한 후 값을 깎아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더란다. 더 이상은 못 깎아준다며 버티자 이 사람은 대신 “50개를 사겠다”고 제안했고 그 바람에 값을 더 깎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당시 나는 이전엔 10분의 1 전략이 통했는데 이번에는 왜 안 먹혔는지, 난 실패했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는데 협상에 관한 이 두 권의 책을 보면서 이런 의문들이 풀렸다.

두 책의 가르침 제1조는 협상을 하기 전 상대방에 대해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거나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과 일맥 상통한다. 가령 상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주인들의 행태를 가이드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10분의 1 전략을 폈다. 그러나 상점 주인은 나를 전혀 몰랐다. 그러니 ‘돌아서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돌아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 후 다시 방문했을 때는 주인이 ‘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인을 상대하면서 상점 주인들은 한국인 고객의 특성을 잘 알게 됐다. 그런 후 이 책의 가르침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책에서 말하는 압박전술을 펴면, 그 제안을 무시하거나 오히려 역으로 압박전술을 펴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니 주인은 ‘살 테면 사고,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압박했다.

협상을 시작할 때 목표 가격을 높게 잡으라는 가르침도 있다. 그래야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유리한 가격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짝퉁시장에서 처음에 싸게 살 수 있었던 건 10분의 1 가격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란 얘기다. 그러나 이도 어느 정도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은 안 된다고 한다.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있는 최고 가격, 그게 목표가격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들은 또 협상은 인간관계라고 강조한다. 상대방과 교감을 함으로써 믿음과 친근감이 생기면 협상이 순조롭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흥정에 성공했던 건 상점 주인과 친근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더 이상 가격을 못 내리겠다며 압박 전술을 펼 때는 국면을 전환하라는 가르침도 있다. 그럴 때는 가격에 매달리지 말고 서비스와 품질 등 다른 안건들을 같이 테이블에 올려 협상하라는 얘기다. 상점 주인이 더 이상 가격을 못 내리겠다고 하자 그 일행은 대량구매라는 카드를 테이블에 올렸기 때문에 흥정에 성공한 건 아닐까.

이 책들을 읽다 보면 한미 간 쇠고기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못했던가도 알 수 있다. 지은이들은 협상할 때 절대로 서둘러선 안 된다고 한다. 주도권을 쥐려면 속도 조절이 아주 중요하고 지연전술도 불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감 시한을 정해 놓고 협상하는 건 당연히 금물이다. 상사가 시한 내에 협상을 끝내라고 지시한다면 상사를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시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까지 협상을 끝내는 게 한국 측 협상팀의 과제였다면 더 이상 내용을 볼 필요도 없다는 얘기다. 당연히 한국에 불리하게 됐을 것이라는 의미다. 협상팀의 책임도 면제되지 않는다. 시한을 정한 상사를 설득시키지 못한 책임은 크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양측이 어떤 손실을 입는지에 대한 계산도 필요했었다. 결렬되면 한국 측 손실이 더 클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무산과 한미 간 동맹 훼손 손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미국도 손해를 입는다. 한국보다는 적겠지만 FTA 무산에 따른 피해다. 한국 쇠고기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손실도 있다. 협상은 이처럼 결렬될 경우의 손실, 책의 표현대로라면 한미 두 나라의 배트나(BATNA,최선의 대안) 사이에서 진행돼야 한다. 한국측 손실액(한국이 양보할 수 있는 상한선)과 미국측 손실액(미국이 양보할 수 있는 상한선)의 중간 지점에서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협상은 중간 지점은커녕 한국의 일방적인 양보로 끝났다. 미국은 손실을 거의 보지 않았다. 지은이들은 아마도 이런 협상을 협상이라 부르지도 않을 것 같다.

두 책에 따르면 미국도 협상의 패자다. 지은이가 가장 강조하는 게 협상은 ‘상생(윈-윈)’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협상, 신뢰가 더 쌓이고 평판이 더 좋아지는 협상이 좋은 협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의 평판이 오히려 깎였다. 한미간 신뢰도 상당히 붕괴됐다. 반미감정은 더 강해졌다. 한국을 압박하면 미국산 쇠고기가 더 많이 팔릴 줄 알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도 이제는 아주 커졌다. 모두가 불만족스런 협상이었다. 지은이의 논리에 따르면 차라리 협상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협상이었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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