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읽기] "어머머" 달고 사는 공주병 여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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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 소녀티만 내려는 부하 여직원에게 뭐라고 주의를 줘야 할까.

유수회사 간부사원인 C씨(46). 업무 능력도 뛰어난 데다 외국에서, 외국 사람과 근무했던 해수가 많아 남달리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직장에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업무능력으로 승부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렇게 일해 왔다.

그런데 최근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바로 입사 2년차 된 젊은 여직원 K양(27) 때문이다.

3개월 전 회사에서 부서 재배치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무심결에 K양의 행동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다른 사원들이 책상을 옮기고 짐을 나르는 동안 동참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어머머, 무겁겠다"는 등 쓸데없는 이야기만 되뇌고 있는 게 아닌가. C씨는 순간 화가 났지만 주변에서 가만히 있는데 자신이 나서기도 어색해 그냥 지나쳤다. 그날 이후 유심히 K양의 행동을 지켜봤는데 그녀는 힘든 일은 늘 주변 남자 동료의 몫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컴퓨터 선을 연결할 때도 옆자리 남자 동료에게 부탁하고, 밤샘 작업이 있을 땐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빠졌다.

하루는 팀장을 불러 그녀의 행동에 대해 넌지시 물어봤는데 그는 웃으며 "예쁜 여자들은 원래 인물값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그러고 보니 그녀가 이런저런 일을 시켜도 주변 남자들이 별다른 불만 없이 해주는 것 같다. C씨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참고 있는 일에 과연 상사인 자신이 나서도 되는 것일까.

먼저 C씨는 자신이 K양을 후배 직원이 아닌, 젊고 예쁜 여성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自問)할 필요가 있다. 만일 젊은 남자 직원이, 혹은 못생긴 여직원이 K양과 유사한 행동을 했을 때에도 과연 자신이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할지에 대해 솔직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녀의 행동이 묵묵히 일터를 지키는 수많은 직장 여성들이 동료 남성들에게서 '여자들은…'이란 말로 폄하될 빌미를 제공한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C씨 자신이 진정으로 K양의 직장 선배이자 회사 경영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를 바라본다면, 그녀가 보이는 문제의 행동을 단호하게 지적해야 한다.

우선 직장 동료나 선.후배는 일을 하기 위해 만난 공적인 관계라는 점을 분명하게 일깨워 주자.

또 연인이나 아내에게 부탁할 일을 함께 일하는 여성에게 시키는 남성들처럼, K양의 행동 또한 동료 남성들에게 치졸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인식시켜 줘야 한다. 게다가 그녀의 행동은 승진은 물론 앞으로 회사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전해줄 필요가 있다.

만일 C씨가 그녀에게 이런 충고를 하기 꺼린다면 자신의 마음속 한구석엔 젊고 예쁜 여성에게 너그럽고 담대한 남자로 보이고 싶은 '사내 대장부' 콤플렉스가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21세기 한국의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남녀가 자연스레 어우러져 협동하면서 일궈 나가야 한다. 자신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이라도 K양을 불러 조용히 타일러 보자.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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