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東隱 김용완회장님 영전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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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은(東隱)김용완(金容完) 회장님.
선생님께서 노령으로 거동이 불편하셔서 그렇게 즐겨나오시던 한양로타리 주회(週會)에도 출석 못하시게 된 것이 벌써 수삼년이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후배들은 항상 노소동락을 즐기시는 선생님의 그 활달한 성품을 알기에 금세 선생님께서 손을 흔드시며 주회장(週會場)으로 들어오실 것만 같이 느껴왔습니다.이제 선생님의 부음에 접하게 되니 저희 후배들의 신변이 졸지에 소슬(簫瑟)해짐을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선생님께서는 일찍이 일본에서도 가장 입학이 어렵다는 히로시 마(廣島)고등사범에서 신학문을 닦으시고중앙고보(中央高普)에서 후진양성에 힘쓰시다가 뜻하시는 바 있어수당(秀堂) 고 김연수(金秊洙)선생님과 함께 민족자본을 위한 신시대의 기업으로 경방(京紡)을 창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전쟁전인 49년 고 김용주(金龍周)선생등과같이 미국을 방문하셔서 한국에도 세계에 관심있는 기업인이 있음을 미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후 국내에서 민간기업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해서 전경련(全經聯)의 전신인 한국경제협의회가 생긴뒤 선생님께서는 여섯차례에 걸쳐 회장직을 맡으셔서 오늘의 전경련 위치를 확고하게 만드셨습니다.선생님이 하시는 일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무( 無)결함적인가는 선생님이 경영하시는 경방이 삼양사.유한양행과 더불어 일제때부터 지금까지도 세무관리들이 이 3사에 대한 세무조사에는 별로 흥미가 없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입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고희가 넘으신 나이에 레닌그라드를 방문할 정도로 진취적인 기업인상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시기도 하였습니다.92세라 하면 천수(天壽)를 하셨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우리 국가.사회에 남기신 위업과 유훈이 너무나 크기에 선 생님의 서거(逝去)는 애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유창순 전경련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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