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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박수받는 일본 검찰총장 退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자리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훌륭한 인물들로 인해 그 조직이 빛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임기를 1년 남짓 남겨두고 17일 자진 퇴임한 요시나가 유스케(吉永祐介.63)일본검찰총장도 그중 하나다.「미스터 검찰」「영원한 주임검사」라 불린 그는 일본 검찰 특수부의 얼굴이었다.
76년에는 록히드사건을 담당하는 도쿄(東京)지검 특수부 주임검사로 그는 단 하루의 휴일을 빼고는 1년 내내 출근,운명을 건 승부끝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총리를 구속시켰다.
일본 검찰이 93년 위기에 빠졌을 때도 그가 나섰다.정치뇌물사건인 사가와규빈(佐川急便)사건에 연루된 정치실세 가네마루 신(金丸信)을 일본 검찰이 별다른 조사도 하지않고 약식기소(벌금20만엔)하는데 그치자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 이 그를 다시검찰총장으로 불러낸 것이다.요시나가는 결국 검찰을 구해냈다.
그는 퇴임식에서 『지난 41년간 검사로서 나의 생활은 행복했다』고 회고했다.그는 곧 도쿄에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낼 예정이다.우리와는 달리 전관예우가 없는 일본에서 그가 돈을 벌 가망성은 별로 없다.그러나 일본 신문들은 『우리는 오늘 한명의 뛰어난 검사를 잃은 대신 또하나의 훌륭한 사회원로를 얻었다』고쓰고 있다.거기에 겹쳐 한국이 보인다.「5.18 불기소」에 앞장섰던 전직 검찰총수가 별다른 해명없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분주한 한국.『역사와 대화하겠 다』고 하자 다시 캐비닛 속의 서류를 뒤져 칼을 휘두르는 한국의 검찰.그리고는 사회에 원로가 없다고 한탄하는 우리 사회.
어쩌면 사회의 병을 치유해야할 검찰과 한국병을 치유하겠다고 나선 정치판이 우리사회의 병을 더욱 깊게만 하는게 아닌지,일본검찰총수의 소박한 퇴임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철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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