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생명일기"낸 루이스 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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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병원이나 요양원 관계자들의 말을 빌리면 환자를 찾는 방문객의표정은 환자를 마주하는 순간 그곳에서 벗어날 궁리부터 짜내는 기색이 역력하다고 한다.여기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식을 찾는 부모 정도라는 것.그만큼 우리 사회가 삭막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가족간의 끈끈한 정과 효(孝)사상마저도 크게 흔들리고 있는 현실에서 3개월이나 혼수상태에 빠진 아버지를 600여일 극진히보살펴 소생시킨 젊은이가 있다.그것도 서구식 사고에 젖은 20대가 그 주인공 .재미교포 2세인 루이스 최(27).그의 부친최재현(69)씨는 그가 시카고대 경제학과 4년에 재학중이던 지난 91년 5월 대구 서성교회에서 설교중 「뇌 동맥류 파열증」으로 쓰러졌다.그날 이후 아버지곁으로 달려와 간호하면서 적은 간 병일기를 모은 『생명일기』(김영사 간행)는 한마디로 말해 한편의 소설같다.『아버지께서 지난 85년 「낙엽은 뿌리로 돌아가는 법」이란 한마디로 미국생활 30년을 과감히 청산할 때 가슴이 뭉클했어요.그러셨던 아버지에게 짙게 드리운 죽음 의 그림자를 보면서 이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의 역할과 삶의 가치,삶의목표를 다시 생각했어요.물질적 성공보다는 매순간 진실되게 사는것을 최고의 가치로 바꿨습니다.혼수상태라는 병세에 쉽게 절망하고 「너의 인생은 따로 있다」는 미국 친구의 권유대로 미국으로돌아가 졸업-취업-결혼의 길을 밟았더라면 평생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그의 간호가 전적으로 아버지를 소생시켰던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그의 간병일기를 읽어보면 그의 지극한 정성과 섬세함이 없었더라면 부친의 소생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하루도 빠뜨리지 않은 성실성,혼수관련 전문서적 10여권 을 독파하고 미국 병원의 뇌환자치료 실태까지 직접 돌아보았던 열성,2년 가까운 입원기간중 한번도 욕창을 앓지 않도록한 간호 비결,의사도 원인을 몰랐던 부친의 딸꾹질이 오랫동안 쌓인 변(便)때문이라고 정확히 짚어냈던 이야기하며 모두가 놀랍다.
그가 「반(半)의사」가 될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만큼 의료진들과의 갈등도 상당했다.『아버지가 갑자기 인간 이하의 「물건」으로 전락하는데 화가 났어요.나의 간호는 한마디로 아버지의 인격을 지켜주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의료진들이 환자를 인간이하로 다루다보니 자연히 진료의 질도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효를 간호 등의 형식으로 표출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라고 생각해요.「긴 병 끝에 효자없다」는 말도 그 형식을 좇은 결과겠지요.효는 각자의 처한 환 경에 따라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야 합니다.』 이번 경험은 그의 인생까지 바꿔 버렸지만 후회하지 않는다.전공인 경제학에서는 지식을 축적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고 한다.그 대신 「글쓰는 사람은 굶어 죽는다」는 주위의 만류로 묻어뒀던 문학의 꿈을 다시 지피겠다고 한다.그 문학의 꿈 도 실은 국민학교때부터 여름방학마다 「읽어야 할 책 100권」을 선정해 독서분위기를 이끌었던 그의 아버지가 키워준 것이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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