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총장실 점거 악습 뿌리 뽑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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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등록금 인상에 반발해 국.공.사립 대학 총학생회의 동결 요구가 한창이다. 연세대.고려대.한양대 등 서울시내 5개 대학은 대학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 중이다. 등록금 투쟁은 3월 신학기 시작과 함께 새로 구성된 각 대학의 총학생회와 한총련 등 총학생회 연합체가 학생들에게 활약상을 보여주기 위한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등록금이 비싸다고 총장실을 점거하는 행태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런 악습은 빨리 근절시켜야 한다.

지난해 물가상승률 3.6%를 훨씬 상회하는 6~10%씩 등록금을 올렸다고 해서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해 업무를 마비시키는 것은 분명 반(反)지성적인 폭력 행사다. 대학생 때부터 이러한 떼쓰는 법을 배우니 사회에 나가서도 단체의 힘으로, 숫자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 등록금에 문제가 있다면 학생답게 이성적으로 대화를 통해 의사를 반영해야 할 것이다. 대학마다 등록금 조정을 위한 협의기구가 있으니 이를 창구로 활용하면 된다. 영국 등 유럽 대학들이 수업료를 인상해도, 미국 사립대학이 지난 10년 동안 수업료를 42% 올려도 학생들은 항의집회를 가질 뿐 총장실을 점령하는 몰상식한 행동은 없다.

등록금 인상 다툼은 대학 운영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취약한 재무구조에서 비롯된다. 155개 사립대의 운영비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62.8%나 된다. 재단 전입금은 6.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부금과 국고지원금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 대학을 설립만 하고 살림살이는 등록금으로 꾸려 가는 일부 사립대학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다. 대학과 재단이 등록금에 목을 매는 전근대적인 경영에서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다.

재단은 수익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총장은 학교 밖에서 기부금을 모금하여 재정의 자립도를 향상시켜야 한다. 등록금을 되레 재단 예산으로 전용하는 비합리적인 회계처리는 금물이다. 학교가 투명성에서 떳떳하다면 총장실에 무단 침입한 학생들을 학칙으로 왜 처벌하지 못하는가. 대학이 물리력과 폭력의 산실이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