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for Money] 깃발이 너무 높은 곳을 피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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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98년 6월께의 일이다. 진행 중이던 경제 방송에서 우리 기업 주식 사기 운동을 벌이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종합주가지수는 300 밑으로 추락했다 간신히 회복 중인 상황이었다. 국민이 주식을 많이 사면 우리 증시와 기업이 안정될 것이다. 그러면 투자자도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몇몇 금융 전문가도 비슷한 주장을 했지만, 이런 주장은 별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해 추석 연휴를 전후해 주가지수가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우리 증시와 경제도 안정감을 찾아갔다. 그 이듬해 현대증권의 이익치 회장이 바이코리아 펀드를 내놓았다. 논리 구조는 우리 기업 주식 사기 운동과 같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바이코리아 펀드가 발매된 99년 3월 무렵에는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는 경계 심리도 커질 무렵이었다. 그런데도 이익치 회장은 주가지수 2000, 3000 시대를 겁없이 외쳤다. 은근히 애국심에 호소하는 대대적인 마케팅도 벌였다. 아니나 다를까 2000년 들어 정보통신(IT) 분야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해 말 이 펀드의 수익률은 말 그대로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이 와중에 현대그룹은 골육상쟁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회장도 주가 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당시에는 ‘Buy-Korea’가 아니라 ‘Bye-Korea’라는 얘기가 크게 유행했다.

지난해 한 신문에서 인사이트(Insight) 펀드 열풍에 대해 극찬하는 이익치 전 회장의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끼친 당사자의 말로는 너무 당당해서였다. 더욱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주도하는 인사이트 펀드는 바이코리아 펀드와 흡사할 만큼 단기간에 시중 자금을 빨아들였다. 물론 이 펀드는 위험이 분산된 글로벌 자산 배분 펀드로, 바이코리아와는 다르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이 펀드는 중국에 전 자산의 3분의 2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 바이코리아가 한국 펀드였다면, 인사이트는 중국 펀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펀드의 운명이 중국 증시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타이밍이 문제가 될 법하다. 단기적으로만 보자면, 지난해 이 펀드가 출범한 시기는 중국 증시가 한창 좋았을 때다. 그 후 중국 증시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여기다 중국 경제도 인플레이션 우려에 시달리고 있다. 당연히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펀드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지나치게 단기적인 시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오히려 늘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과연 글로벌 자산 배분 원칙에 부합하는 것일까? 단기 수익률은 잊고 장기적 관점을 취하라는 얘기만 해도 그렇다. 이 말에 동조하는 이들은 바이코리아도 지금까지 그대로 뒀다면 2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놀려 둘 한가한 투자자는 없다. 무엇보다도 경제학자 케인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 역시 깃발이 너무 높은 곳은 피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형 펀드학(學)의 제 1법칙이다.

김방희 KBS 1라디오 ‘시사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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