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페더러-나달 ‘윔블던 대전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7호 26면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생년월일=1981년 8월 8일 ▶출생지=스위스 바젤 ▶체격=1m85㎝·80㎏ ▶프로 데뷔=1998년 ▶주요 우승=윔블던(2003~2007년), US오픈(2004~2007년), 호주오픈(2004, 2006, 2007년) ▶취미=스포츠·플레이스테이션·음악 감상·카드놀이

세계 남자 테니스계에서 로저 페더러(26·스위스)는 매번 전교 1등을 차지하는 우등생이다. 2004년 2월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4년이 넘게 그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2003년 윔블던 우승을 시작으로 총 12차례 그랜드슬램을 우승을 달성한 페더러가 피트 샘프라스의 그랜드슬램 통산 최다승 기록인 14승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세계 테니스界 쫓는 자와 쫓기는 자

하지만 페더러는 유독 한 과목에서 전교 2등한테 밀린다. 2005년 7월부터 줄곧 2위 자리를 지켜온 라파엘 나달(22·스페인)은 클레이 코트에서 페더러를 상대로 9승1패의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요즘 2등의 기세는 더욱 심상치 않다. 지난주 막을 내린 프랑스 오픈에서 페더러를 손쉽게 물리치고 1등의 자존심을 또 한 번 건드렸다. 나달은 이미 지난해부터 1등이 잘하는 과목마저 넘보고 있다. 이 둘은 다음주 윔블던이라는 중요한 시험을 치른다. 페더러가 지난 5년간 우승을 차지했지만 지난해 결승전에선 나달과 풀세트 접전을 벌이며 진땀을 뺐다. 이번에도 2등이 1등을 울릴 수 있을까.

메리엄-웹스터 영어사전은 ‘라이벌’의 의미를 ‘오직 한 명만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정의한다. 라이벌은 서로가 대등한 실력을 가진 경우에만 성립이 된다. 스포츠 세계만 봐도 그렇다. PGA 투어 13년차 타이거 우즈에게는 아직까지도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이 없고 올해를 끝으로 LPGA 은퇴를 선언한 안니카 소렌스탐에게도 한때 라이벌이라 부를 만한 선수가 없었다.

라파엘 나달(Rafael Nadal-Parera) ▶생년월일=1986년 6월 3일 ▶출생지=스페인 마요르카 ▶체격=1m86㎝·81㎏ ▶프로 데뷔=2001년 ▶주요 우승=프랑스오픈(2005~2008년) ▶취미=낚시·골프·축구·플레이스테이션

몇 년 전까지 남자 테니스계에서 페더러에게 라이벌은 없는 듯 보였다. 2004년, 2006년, 그리고 2007년 등 세 번의 그랜드슬램 패권을 차지한 페더러를 전문가들은 이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으로 추대했다.

윔블던에서 세 차례 우승하고 현재 해설자로 활동 중인 존 매켄로는 2006년 윔블던 중계 중 “페더러는 눈감고도 투어 선수의 절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랜드슬램 통산 11승에 빛나는 로드 레이버는 2004년 말 “내가 페더러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고 인정했다. 샘프러스도 2006년 페더러를 가리켜 “내 전성기 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테니스의 기록이란 기록은 모조리 깰 것”이라고 예상했다.

‘라이벌’이란 단어를 모를 것만 같았던 페더러에게 나달의 존재는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나달의 첫 그랜드슬램 우승은 2005년 프랑스 오픈이었지만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6년과 2007년 프랑스 오픈 결승에서 연달아 페더러를 꺾으면서다. 나달은 지난해 윔블던에서 페더러를 풀세트까지 몰고 가더니 올해 프랑스 오픈에서는 그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무력화했다. 특히 두 번째 세트 중반부터 내리 9경기를 따내며 3세트를 6-0으로 이겨 페더러의 기를 꺾었다.

나달의 네 번의 프랑스 오픈 우승 중 지난 세 번은 결승에서 페더러를 상대로 얻은 것이다. “Third time’s the charm(세 번째는 꼭 되는 법이다)”이라는 속설도 페더러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페더러와 나달은 전혀 다른 개성을 가졌다. 오른손잡이 페더러는 차분하고 정교한 플레이를 하며 단색 톤의 셔츠와 반바지를 주로 입는다. 반면 왼손 천재 나달은 울퉁불퉁한 팔 근육을 훤히 드러내는 화려한 색의 민소매 셔츠와 칠부바지를 입고 코트를 누빈다.

둘의 스트로크 성향도 다르다. 페더러는 한 손으로 날카롭게 넘어가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구사하는 반면 나달은 양손을 사용해 톱 스핀이 더 걸린 높은 백핸드를 넘긴다. 특히 공의 바운드가 크고 속도가 줄어드는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이 보내는 높은 공은 상대 선수를 당황시킨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선수의 대결은 백핸드의 승부로 압축되는데 클레이 코트에서는 나달에게 유리하다. 페더러의 주특기인 백핸드 크로스는 나달의 포핸드 방향으로 가게 되지만 나달은 어깨 높이의 톱 스핀 백핸드를 페더러의 백핸드 방향으로 보낼 수 있다. 페더러는 이런 공을 불안한 자세에서 넘겨야 하는 부담이 있어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 페더러는 35개의 범실을 기록했다. 2007년에는 60개, 2006년에는 51개를 범했다. 그나마 올해 실수가 적은 것은 3세트만에 졌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기간 나달의 실책은 63개에 불과하다.

프랑스 오픈 결승전 중계 해설을 맡은 삼성증권 주원홍 감독은 “나달이 왼손잡이라서 유리한 점도 있지만 그게 결정적이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클레이에서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나달의 팔 근육은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함만은 아니다. 주 감독은 “나달은 힘이 좋아 타점에 상관없이 톱 스핀을 걸 수 있다. 상대방이 무리하지 않으면 점수를 딸 수 없는 상황으로 끌고 간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페더러가 클레이에서 약한 것도 아니다. 그의 프랑스 오픈 통산 전적은 23승4패인데 4패 모두 나달을 상대로 기록했다.

주 감독은 “페더러가 무리하게 경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달에게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도 있을 것”이라며 “나달을 이기려면 드롭 발리 등 변칙적인 작전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꼭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심리적 안정이 먼저”라고 말했다.

나달에게 상대 전적 3승2패로 앞서고 있는 제임스 블레이크(28·미국)는 “조심스러운 플레이를 하면 나달을 이길 수 없다. 그를 베이스 라인에 몰아세워야 한다”면서도 “나달은 빠르고 수비가 좋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시즌 세 번째 그랜드슬램인 윔블던이 23일 시작된다. 통산 27승을 달성한 나달은 아직까지 잔디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그랜드슬램에서 11차례 우승을 차지한 비외른 보리는 10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결승에서 안타깝게 진 나달이 올해는 반드시 우승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초반 라운드만 잘 넘기면 된다”고 예상했다.

페더러는 잔디 위의 절대강자다. 프로들이 그랜드슬램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1968년 이후 윔블던을 5년 연속 제패한 선수는 페더러와 보리뿐이다. 호주 출신의 전 세계 1위 레이튼 휴잇은 10일 AFP와의 인터뷰에서 “페더러가 이번 패배로 실망했겠지만 그는 정신력이 강한 선수다. 아직까지 잔디에서는 그를 당할 자가 없다”고 말했다.

아직 20대 초·중반인 나달과 페더러의 라이벌 구도는 이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들은 다음달 초면 테니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회의 우승컵을 두고 다툴 것이다. 테니스 학교의 1, 2등 학생은 오늘도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