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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굴욕 감수’ 단계까지 갔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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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03면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 시위의 격랑 속에서 연이어 국민 앞에 서야 했다. 5월 22일 대국민 담화와 이달 19일 특별 기자회견, 두 차례였다. 이들 입장 표명 사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PR 전문가에게 자문해 분석해 봤다.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으며….”

‘사과 수준 5단계 측정법’으로 대통령 회견문 분석해보니

이 대통령의 기자회견문 머리는 감성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무려 다섯 차례 이상 감성적인 표현을 썼다. “취임한 지 석 달이 가까워 온다”는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시작한 5월의 대국민 담화문과는 판이하다. 거리 시위대가 봇물을 이룬 상황이 대통령의 자세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5월 대국민 담화가 사건 축소에 중점을 뒀다면 19일 회견은 강력한 개선 의지를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지적했다. 5월 담화문에서는 쇠고기 협상의 배경과 그 불가피성을 24문장에 걸쳐 설명했다. “선진국들과의 격차는 벌어졌다”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 “1970년대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는 표현도 구사했다. 연세대 한정호(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국민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불가피성을 강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19일 회견문에서는 불가피성 등 설명 부분이 15문장에 그쳤다. 설명 자세도 달라졌다. “취임 1년 내에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매우 급했다”면서 “자녀 건강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고 했다. 한 교수는 “자기 주장이 강했던 담화문과 달리 회견문에선 쇠고기 협상이 ‘선의’에서 비롯됐음을 간곡한 어조로 강조했다”고 제시했다.

쇠고기 협상 자체에 대한 설명이 크게 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5월 담화의 경우 5문장에 그쳤으나 19일 회견문에선 21문장을 할애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요구를 꼼꼼히 헤아리지 못했다”는 책임 시인성 발언을 덧붙였다. “국민과 함께 가겠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가겠습니다”라며 자세를 낮췄다. 청주대 김찬석(광고홍보학) 교수는 “자신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자는 설득이 아니라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바꾸겠다는 개선 의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했다.

1차 담화 때 ‘사과’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 대통령은 19일 회견에서 “사과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선언했다.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사과했다. 사과에 쓰는 단어 선택도 달라졌다. “제 탓” 대신 “자책하고 있다”고 했다. 책임감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분명히 사과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단어 선택에 고심했을 것”이라며 “국정 최고 책임자가 ‘자책’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강한 사과 표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뼈저리게 반성한다”고 밝힌 데 대해 김 교수는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수사적 표현은 다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 쓰는 사과 메시지 5단계 측정법(베도이트의 메시지 분류법)에 따라 회견·담화문을 분석했다. 3단계인 ‘사건 축소’에 주력했던 지난달 담화 때와 달리, 회견문은 4단계인 ‘개선 의지’에 집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표현은 가장 높은 단계인 ‘굴욕 감수’까지 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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