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韓.日 문화교류와 '문학의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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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마치 카오스나 아수라도(阿修羅道)의 세상을 헤치듯 어지럼을 느끼며 용케 넘긴 한 해.그래도 새해 새날을 맞으니 알지못할 넉넉함에 잠겨들게 된다.아침에 일어나 집어드는 신문부터 푸짐하다.평소보다 훨씬 늘어난 지면의 부피도 그러려니와 신춘문예의 상큼하고 풍성한 잔치까지 한 몫 거들기 때문이 아닐까.
일본신문들의 1월1일자 역시 양적으로야 우리보다 윗길이다.보통때의 갑절이 넘는 80~90여 페이지를 찍어낸다.하지만 몸피만 늘었다 뿐 시답잖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이유는 한가지다.
양념삼아 실어놓은 새해 축시나 상투적인 연재소설 따위를 빼면 문학이 아예 실종되고 없는 탓이다.그러고도 노벨문학상을 두번씩이나 탔다는 게 신통한 노릇이다.필경 다른 요인이 있으리란 짐작은 한다.신문이 문학을 이끌던 시대는 그쪽 동네에서야 이미 끝물일 수 있는 것이다.그러니 엉거주 춤 체면치레에만 그쳐도 그 뿐이리라.
생각은 곁가지를 쳐 한-일간의 문화교류를 에워싼 입씨름과 더불어 「문화침략」운운하는 살벌한 문구도 뇌리를 스친다.나로서는문화에 따라붙는 「침략」이라는 말 자체가 다소 요령부득이지만 어쨌거나 그 첨병으로 영화와 대중가요가 꼽히는 모양이다.그렇다면 문학을 위시한 여타 문화는 뒷짐지고 있을 형편이란 뜻일까.
요즘 문학도들 사이에서는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단골로 등장한다.예전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나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화제였다.그에 견주어 일본의 젊은 축에서는 어느 한국작가의 이름이 들먹여지는지 궁금 하다.
무역역조의 해법은 우리 물건을 많이 내다파는 것이다.그게 문화역조이든 문화침략이든 그 대응법 또한 마찬가지,우리 것을 더많이 내보내는 길외엔 묘책이 있을 리 없다.
마침 올해는 「문학의 해」다.문학이 결코 구호 하나로 이뤄지지야 않겠지만 그렇게나마 거름을 주어 옛날 우리 어른들이 문화를 가르쳤듯 항상 일본을 앞질러 갔으면 싶다.『천재는 문학에 투자한다.왜냐하면 그것은 앞날의 모든 이들에게 배 당을 남기기때문이다』는 미국 수필가 존 버로스의 말을 새삼 곱씹게 되는 때다.
조양욱 고려원 일본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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