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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정권퇴진 요구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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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퇴를 앞둔 최장집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고별 강연이 2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진=김태성 기자]

한국 진보 정치학계의 ‘거목’ 최장집(정치외교학과) 고려대 교수가 20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마지막 강의를 했다. 올 1학기를 끝으로 정년 퇴임한다. 최 교수는 수업 직전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은 대의정치”라며 “촛불집회에서 정권 퇴진 요구나 탄핵, 대통령 소환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촛불시위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넘어 정권 퇴진 얘기까지 나오는데 어디까지 가는 게 맞다고 보나.

“정권 퇴진 요구나 탄핵, 대통령 소환 등은 군중집회에서 나올 만한 얘기지, 나는 그것에 찬성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군중집회를 통해 시민들이 의사를 표명한다는 건 정부와 정책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의회가 이런 문제를 제도권 안에서 빨리 풀 수 있어야 한다. 제도 안에서 정치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네티즌에 대해 ‘집단 지성’이라는 의견도 있고 권력화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인터넷 덕분에 대중은 횡으로 연결될 수 있었고 이전보다 결속이 강화됐다. 정부가 시민을 통치할 때 책임과 부담을 더 크게 느끼게 됐다. 비이성적인 일부 네티즌의 행태가 있지만 기존의 강력한 국가 권력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의사 표현 수단이 등장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대의정치와 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가 권위주의적 성격으로 회귀하려 한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보는 건가.

“전진이나 후퇴라고 보기보다 민주화는 장기적으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주화의 경험이 20년밖에 안 됐다. 한국 기성세대들이 아직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리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권위주의적 국가 구조와 행태를 가지고 있어 충분히 민주화가 안 됐다. 이런 측면에서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되기 위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현재 우리는 민주주의의 형식은 구사하고 있으나 선출된 정부나 대통령이 국민에게 책임져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더 중요한 원리라는 점에서는 취약하다. 정당 제도화가 굉장히 약하고 정당이 대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강력한데 정당이 국민 의사를 대변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문제다.”

-퇴임 후 계획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끝난다. 현실정치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개입하는 건 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당정치 활성화해야”=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는 수강생 외에도 최 교수의 동료 교수와 제자, 일반 시민 등이 자리를 메웠다. 180명 정원의 강좌였지만 1000석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마지막 강의의 제목은 ‘한국의 정치와 나의 정치학’이었다. 최 교수는 “권위주의 시기부터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 현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속에서 민중과 노동, 호남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다뤄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운동권’이나 ‘친북 좌경’ 인사로까지 불리게 됐고, 스스로 정말 급진적인가 되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촛불집회를 거론하며 “내 관점은 ‘이명박 정부가 좌초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거리시위를 통한 직접민주주의’도 아니다. 정당정치를 복원·활성화해 대의제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문적 성향과 관련, “나는 한국 사례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변방의 정치학도’였다. 하지만 결코 민족주의적 성향은 아니었고 항상 비슷한 다른 나라 사례를 비교해 한국을 재해석해 왔다”고 밝혔다.

글=이충형·이진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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