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이럴 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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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화물연대의 운송거부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아직 부분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곳이 있긴 하지만 최악의 물류대란만은 겨우 막았다. 애초에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는 예견돼 있던 것이었다. 화물차의 연료인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추월할 정도로 폭등했으니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하다. 파업을 목전에 둔 지난 10일, 부산해양항만청에서는 ‘이상한’ 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회의의 결론은 ‘화물연대가 운송거부를 해도 부산항 컨테이너 수송 차질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라든지, ‘화물연대에 가입한 차량이 전체의 3.4%에 불과해 일반 화물 수송도 별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거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화물연대에 가입하지 않은 운전자들도 대거 운송거부에 동참했다. 아니, 동참이라기보다 그들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운행하면 할수록 손해인데 누가 화물차를 몰고 나가겠는가”였다. 사태가 커지자 여기저기서 “이럴 줄 몰랐다”는 말이 나왔다.

#‘쇠고기 청문회’ 때의 한 장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때 광우병 발생 시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 왜 협상 결과에 포함되지 않았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민동석 농식품부 통상정책관의 답변은 이랬다. “수석대표로서 거기까지는 챙기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고.” 촛불 집회 때도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던 초반, 정부나 청와대의 판단은 ‘곧 수그러들겠지’였다. 그러다 엄마들이 나오고, 넥타이 부대가 합세하자 ‘아차’했지만 이미 늦었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이 19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보이지 않았다. 소위 ‘윤길현 사태’에 책임을 지고 공식 사과를 한 뒤 자진해서 ‘무감독 경기’를 한 것이다. 지난해 챔피언이자 현재 1위인 SK는 두산에 0-8로 대패했다. SK 투수 윤길현은 지난 15일 KIA전에서 최경환에게 위협구를 던진 뒤 사과하지 않아 양팀이 몸싸움 일보 직전까지 갔고, 삼진을 잡은 뒤에는 욕을 하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혔다. SK 구단은 통상적인 위협구 다툼으로 판단하고 당사자 간 전화통화로 사태를 끝내려 했다. 그러나 KIA 팬뿐만 아니라 다른 구단 팬까지 합세해 ‘안티SK’ 움직임으로 나타나자 뒤늦게 윤길현을 2군으로 내려보내고 감독이 직접 사과하기에 이른 것이다. SK 구단은 “이렇게 사태가 번질 줄 몰랐다”고 했다.

세 경우 모두 초반 판단의 잘못으로 사태를 키운 예다. 왜 안이하게 생각했을까. 판단의 근거는 ‘예전의 경우를 보면’이었다. 변화의 흐름을 잡아채지 못했다. 이번 화물연대 운송거부는 단순히 돈을 더 받기 위한 통상적인 투쟁이 아니었다. 경유값 폭등으로 운송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변화를 눈치챘다면 일반 화물차주들도 운송거부에 합세할 수 있다는 예상을 할 수도 있었다.

쇠고기 협상도 마찬가지다. 한·미 FTA라는 대(大)를 위해 쇠고기 수입이라는 소(小)는 희생할 수도 있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간과했다. 인터넷의 위력이 얼마나 세졌는지도 잘 몰랐다.

요즘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은 TV 중계에 불만이 많다. TV에서 투수의 버릇이나 감독의 작전 등을 너무 상세히 알려준다는 거다. 요즘 케이블 TV에서는 4게임 모두를 중계한다.

국내 메이저 리거들의 부진과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군행으로 프로야구 관심이 국내로만 쏠린 탓이다. 모든 게임이 중계되다 보니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을 부분도 놓치는 법이 없다. 캡처된 화면이 금방 인터넷을 통해 전파된다. 윤길현의 욕도 화면에 비친 입 모양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달라졌으면 대처도 달라져야 한다.

세계적인 경영학 석학인 피터 드러커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변화 리더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변화 리더’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변화에서 기회를 찾아내고, 그 기회를 의미 있는 결과로 만드는 사람이다. 드러커는 변화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를 수동적으로 관리하지 말고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더가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하는 것은 기업 경영이든, 국가 경영이든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것, 매우 어려운 얘기다. 변화의 주체는커녕 변화를 따라가지도 못해 일어나는 사건들만도 부지기수다. 변화를 놓치는 것은 과거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변화를 읽는다는 것은 미래를 보는 눈이다. 미래는 준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손장환 기획취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