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북한 측 생떼 언제까지 들어줄 건가

중앙일보

입력

금강산에서 있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 과정에서 일어난 한 남측 안내관의 해프닝성 '사담(私談)' 발언이 문제가 되어 진행 중이던 행사가 한때 돌연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또다시 남측 방문단장과 통일부 장.차관이 나서서 사과는 물론 '유감'과 함께 '재발 방지'를 다짐하는 메시지를 북측에 건네고 나서야 겨우 봉합되었다.

그러나 앙금은 남아 있다. 노무현 정권은 문제가 된 '사담' 발언의 주인공인 통일부 직원을 "엄중 문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한두 가지 근본문제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은 금강산 치마바위에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이라는 문구를 놓고 빚어졌다고 한다. 문제의 통일부 직원은 이날 북측 행사 관계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문제의 '천출명장'은 한문으로 '天出'로 쓰면 '하늘이 낸'의 뜻이 되지만 '賤出'로 쓸 경우에는 '천민 출신'의 뜻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 말에는 아무런 잘못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이를 트집잡아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금강산을 다녀온 사람들의 소감을 종합해 보면 지금 금강산 전역은 북한의 세습 독재자인 김일성.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온갖 '낙서(落書)'류의 깊게 음각된 글들이 뒤덮고 있어 비단 통일 이후에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정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환경공해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사정에 비추어 본다면 문제가 된 통일부 직원의 '사담' 발언은 오히려 점잖은 것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남쪽에는 '환경공해' 차원에서 전북 부안의 원전수거물관리시설 건설에 반대하고 경부 고속철도를 비롯한 기간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그러한 NGO들이 금강산의 이 같은 '환경오염'에 대해 누구 하나 단 한마디 거론하는 일이 없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표현의 자유' 문제다. 그동안 남쪽에서는 작금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시비 과정에서 소위 '탄핵반대'를 외치는 NGO들이 이른바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불법적인 '촛불시위'를 강행하는 사태가 빚어졌었다. 그러나 이같이 남쪽 내부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탄핵반대'세력의 어느 누구도 문제의 '표현의 자유'차원에서 이번 사건을 보고 이를 남북관계에 적용시키려 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남측의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진하는 남북관계가 북측이 시비하면 남측은 무조건 이를 수용해 사태를 수습하는 일방적 관계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盧정권은 6.15선언을 살리고 남북대화와 남북 교류.협력의 추진을 위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측의 바로 이 같은 태도 때문에 "6.15선언 이후 '남조선 사회'에서는 반공.보수세력이 밀려나는 대신 진보적 운동세력이 주류로 등장하고 운동권 출신이 권력의 칼자루를 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 모든 변화들은 (김정일)장군님께서 력사적인 6.15 북남 공동선언을 마련하시어 남조선에서 진보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주시고 반공보수분자들을 철저히 고립시킨 결과"라는 북측의 오도(?)된 '남조선관'이 초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북대화, 이러한 남북 교류.협력을 과연 '열심히' 추진해야 하는 것인가? 이 같은 남북대화, 이 같은 남북 교류.협력이 과연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가치, 특히 기본적 자유와 인권의 제약까지 감수하면서 '열심히'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4.15총선의 문턱에서 이 역시 유권자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동복 전 국회의원 전 남북고위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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