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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베트남 전쟁영웅 지압장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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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살아서 걸어다니는 베트남 현대사,디엔 빈 푸의 영웅,동양의 나폴레옹,베트남 도덕성의 파수꾼….그는 70년의 긴 세월동안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군인으로 싸웠다.1946년부터 75년까지30년 이상 그는 인도차이나의 원시림을 누비면서 당대의 강국 프랑스와 미국을 굴복시키고 호치민(胡志明)과 함께 마침내는 베트남의 완전독립과 통일을 성취하는 대업을 이루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는 항불(抗佛)투쟁을 하면서도 프랑스문학에 심취하고 베트남전쟁의 와중에서도 피아노로 쇼팽과 베토벤을 연주하는 여유를 보였다.젊은 시절 한때 고등학교 역사교사를 지낸 역사학도여서 가질 수 있는 거시적 안목과 사필귀정을 믿는 베트남 사람 특유의낙천주의가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몰아낸 그의 전략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보 구엔 지압.84세.그는 지금 혁명1세대인 원로의 한사람으로,그리고 그냥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국민들에게 격려가 되고 젊은이들의 사표(師表)가 되는 독립투사로,전쟁영웅으로 조용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하노이 시내.그의 아내 당 비 흐 하 박사가 역사학교수로 있는 사회인문과학원 회의실에서 이 전설적 인물을 만났다.기자로서는 1965~66년 베트남전쟁 취재 당시부터품어 오던 소망 하나가 이루어진 것이다.
어깨에 별 네개를 얹은 군복차림의 지압은 나이답지 않게 혈색이 좋고 상체가 꼿꼿하고,하는 말에는 힘이 있다.그의 손을 잡는 것은 말의 과장없이 「역사와의 악수」였다.지압은 기자가 질문도 하기전에 한국.베트남관계에 언급했다.
『두 나라 관계가 깊어지는게 기쁩니다.도모이 서기장이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하여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한-베트남관계는 더욱 확대되어야 해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베트남의 혁명 1세대는 독립운동의 수단으로 공산주의를 채택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인도주의적 사회주의 실현은 우리의 목표야.베트남에 맞는 사회주의 말이오.』 -지금 말씀하시는 사회주의란 마르크스.레닌주의 말인가요.
『인도주의적 사회주의는 모든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를 의미합니다.』 -1986년부터 베트남이 시행하고 있는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 도이모이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입니까,시장사회주의입니까. 『그것은 계획된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어.시장은 자본주의의독점물이 아닙니다.시장은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어요.그런데 시장경제를 실시하면서 성장에만 치중하고 사회적인 측면을 등한히한데서 온갖 부작용이 생긴 거지요.생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사회문제입니다.』 -도이모이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물론이지.베트남은 아시아의 곡창지대의 하나인데도 도이모이 이전에는 쌀을 수입해야 했어.그러나 지금은 다시 쌀을 수출하고있어요.도이모이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경제.사회개발의 방향을 설정하여 기간산업만 국영으로 남겨두고 농업을 비롯 한 나머지 분야는 민간에게 넘기거나 국영과 민영을 혼합한 방식으로 바꾸고 있어요.』 -소련.동구의 사회주의는 왜 실패했습니까.
『모든걸 중앙집중으로 한게 실패의 원인이지.』 -장군의 부인을 포함한 베트남학자들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능케한 요인의 하나가 유교적인 전통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요.
『유교는 계급사회의 논리입니다.인민을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하고,조국의 개념이 흐리고,노동과 여성을 경시하고….평등사상의 부재(不在)가 가장 큰 약점이야.베트남에는 맞지 않습니다.베트남은 기원 4세기 최초의 독립운동가가 여성이었던 나라입니다.』-한국과 동유럽에서는 과거청산이 큰 사회.정치적 문제로 되어 있습니다.정의(正義)를 위해 과거의 정권이나 체제에서 비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할 것인지 아니면 새시대의 사회통합을 위해관용을 베풀어야 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져있습니 다.
『화합이 최우선이지요.호치민이 강조한 것도 단결이었어.베트남통일 후 처음 실시한 선거에서 우리는 사이공정부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두옹 반 민에게까지 공민권을 주었어요.75년 베트남을떠난 난민이 150만명인데 그들이 돌아 오겠다고 하면 언제든지환영합니다.』 (지압은 역사 바로보기에 인색한 일본에 대해서도관용하는 입장을 취했다.) -21세기에는 중국이 거대시장으로 등장할 전망인데 그렇게 되면 정치.군사적으로 아시아지역에서 패권을 노릴 위험은 없나요.
『한 나라의 힘을 평방미터로 측정할 수는 없어요.』 ***中패권주의 겁안나 -이 지역의 안보를 위해 미국이 맡을 역할이 있습니까.
『이 지역의 평화를 지킬 의무는 아시아의 민족들에게 있는 겁니다.아시아민족이 단합하면 돼요.』 현실주의자로 통하는 그였지만 미국의 역할과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서는 베트남전쟁과 1979년 중월(中越)전쟁때의 지압장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것같았다.
그리고 시장사회주의 장래에 대해서는 기자의 거듭된 「추궁」에도 모호한 태도를 지켜냈다.북한을 의식해서인지 남북관계와 통일전망에 대한 질문도 비켜갔다.
하노이=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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