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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히데요시의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일본의 공영방송 NHK-TV가 내년도 주말 대하역사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1598)를 정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현재의 일본인들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과 교훈을 던지는 대하드라마는 35년째 계속되고 있는 NHK의 간판프로그램이다.
한 프로에 무려 1년간씩 시청자들의 흥미를 붙잡아두기 위해 기울이는 NHK의 정교한 노력덕분에 이 프로는 이제 일본국민의역사교육장으로서도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올해엔 몇년째 계속되고있는 정치적 리더십 부재(不在)에 자극을 주기 위해 에도(江戶)막부 최대의 강권통치자 8대쇼군(將軍)요시무네(吉宗)를 방영,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한국인들에겐 임진왜란의 「원흉」으로 각인돼 있는 히데요시가 실은 일본인들에겐 가장 인기있는 역사적 인물중 한명이다.NHK대하드라마의 주인공만으로도 이번이 세번째며 10여회에 걸쳐 주요배역으로 등장,여러각도에서 인물조명이 이뤄졌다.
NHK가 굳이 이 시점에 다시 그를 주인공으로 선정한 것은 「꿈을 실현한 사나이」로서의 히데요시상(像)이 절실했기 때문이다.수석PD 니시무라 요시키(西村與志木)의 설명.『고베(神戶)지진으로 시작돼 오움진리교 독가스사건,장기불황 등 으로 95년은 무척 우울한 한해였다.이같은 분위기를 바꾸는데는 히데요시가필요하다.그가 이룬 일본 제일의 석세스 스토리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이다.그는 맑고 에너지가 충만한 지도자다.지금일본의 젊은이들은 꿈을 실현하기 위 해 노력하는 것조차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천하인(天下人)에 오른 히데요시는 일본역사를 통틀어 입신출세의 대명사다.NHK는 그의 출세기를 통해 현재의 일본인들에게 『꿈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며 출세는 좋은 것』이라고 설명할 작정이다.예컨대 요즘의 샐러 리맨들에게도 히데요시를 본떠보라고 권유할 셈이다.장악력 강한 창업주(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아래 말단사원으로 출발,맹렬성을 인정받아 조그만 자(子)회사의 간부가 되고이어 본사 중역을 거쳐 오너가 비명에 가자 2세를 제치고А일약대 기업의 총수에 오르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제일 관심이 가는 것은 이 드라마가 임진왜란 부분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메이지(明治)유신이래 히데요시가 영웅시된 배경에는 그의 조선침략을 미화,이를 한국병탄과 대동아공영권추구에 활용한 권력의 작용이 있었다.일본인들의 정서속에는 「침략과 국위선양」을 히데요시예찬론으로 표현하는 흐름이 분명히 있다.
다만 NHK드라마의 원작자(사카이야 다이이치.堺屋太一)는 임진왜란을 『일본외교사상 일찍이 없었던 어리석은 짓(愚擧)』이라고 말하고 있다.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임진왜란은 히데요시의 영토확장욕과 공명심이 부른 무모한 도전이었으며 제국 주의 침략의좋지 못한 시발』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소 우세한 편이다.「조선출병」을 거품경제 전성기 일본기업들의 무모한 해외 주식.부동산투자와 닮았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일본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역사드라마의 무대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라는 세 영걸이 할거하며 정권이 교대되는 전국시대다.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각종 사극물은 대체로 두가지의 기본 메시지를 전 하고 있다.
첫째,오늘날 꽃을 피운 일본식 경영과 번영은 전국무장(戰國武將)들의 집요한 도전과 실험이 쌓여 나온 것이라는 긍정적 역사평가다.둘째,악마성과 정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권력은 찬탈자나 피해자를 당사자들이 판단할 성질이 아니라는 점 이다.그런 점에서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세 영걸이 저지른 비슷한행위들을 놓고 악인이나 선인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런 일본과 이웃해 살고 있다.
(일본 총국장) 전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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