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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프로 어린이 출연 위험수위-수치심 주고 억지 웃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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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코미디 프로의 어린이 출연이 위험수위에 달했다.가뜩이나 어린이들에게 기성 연예인 흉내내기로 억지웃음을 자아내는등 물의를 빚어왔던 코미디 프로가 이번에는 어린이들에게 공포와 수치를 안겨주고 이를 즐기라는 엉뚱한 발상을 해내기에 이른 것.
문제가 된 프로는 MBC가 지난 23일 방송한 『TV파크』의성탄특집 「혼자서 간다」코너.당초 이 코너는 어린이 혼자 아빠의 직장을 찾아가게 해 독립심과 모험심을 키워주는 참신한 기획으로 평가됐었다.그러나 이날 성탄특집으로 마련된 「공포체험」편에서는 18명의 유치원 아이들을 출연시켜 사방이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세트에 들여보내 놓고 산타클로스에게 평소의 잘못을 고백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시키는가 하면 겁에 질려우는 아이를 『울지마』라며 윽박질렀다.
심지어 『바지를 내리고 고추를 보여보라』는 대목까지 여과없이방송,외국같으면 당장 어린이 성추행으로 고소될 추태까지 연출했다. 방송이 나가자 마자 이 프로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면서 PC통신에만 수백명의 시청자들이 아동학대와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해왔다.이 과정에서 일부 시청자들은「어린이집 원생」이라는 자막을 보고 이 어린이들이 보육원생인 것으로 오해해 『부 모없는 아이들을 놀렸다』며 더욱 격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작자 김영희씨는 『엄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잘못된 버릇을 고쳐주기 위한 것』이라며『사전에 부모들과 협의를 끝내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치원 관계자는 『성탄특집「혼자서 간다」에 출연한다는것만 알았지「공포 체험」인 것은 방송국에 갈때까지 몰랐었다』며『방송출연후 쑥스러워하는 아이가 생겼으며 특히 바지를 내리게 한 부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신과 의사 김정일씨는『잘못을 억지로 고백하게 하는 것 자체가 어른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라며 『어린시절의 공포나 수치체험은 아이들의 개성을 억누르고 자기표현을 위축하게 한다』고 진단했다.방송계 일각에서는『코미디 프로에 어린이들을 출연시켜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것 자체가 아이디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어린이들의 코미디 출연에 엄격한 기준이 세워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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