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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존재 상실의 시대에 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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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초 남제주군 대정읍 해안에서 5만년 전의 발자국 화석 발견 소식에 몹시 흥분했다. 문화재청의 발표 직후 연대 추정에 논란이 일긴 했지만 생성연대 정밀조사에 들어갔으니 곧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만약 당초 발표대로라면, 이는 동북아 민족이동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요, 고생물학의 문화 보고로 평가되고도 남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직립하면서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되자 돌과 나무로 무기를 만들고 불을 이용해 들짐승을 사냥했다. 풍성한 먹이를 기원하며 바위그림도 새겼다. 신석기 시대에는 야생벼를 재배하고, 가축을 사육하며, 마제석기와 토기를 만들어 삶을 윤택하게 하는 한편 신앙으로 인간정신을 살찌웠다. 그만큼 지혜로워진 것이다.

청동기.철기 시대를 거쳐 삼국시대에 이르자 더 많은 비옥한 땅과 백성이 필요해졌다. '운반의 혁명'급인 마소가 끄는 수레도 나왔다. 정착마을과 소읍의 발달은 곧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잉여를 지키고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왕권이 강화되고 땅이 넓어져 수확이 많을수록 외적의 침입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앞을 다투었다. 고려.조선 왕조 또한 인간의 생애처럼 생성과 성장, 융성과 소멸의 길을 걸었다.

7000년 역사에서 왕과 왕비, 영상, 장군, 대통령과 학자, 장관이 수많은 별처럼 명멸했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몇이나 될까.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기억해낼 '과거의 현재화'는 또 얼마나 될까. 물질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정신적으로 지혜로워진 우리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초고속철 시대가 되면 바이칼 호수의 3분의 1 남짓 되는 우리나라에서 지방 공항과 관제탑. 활주로는 쓰임새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자명한 일이지만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어떤 조직.시설.기자재도 존재의 의미와 본질을 잃어버릴 때 아무런 쓸모가 없다. 아니 실존할 수도 없다. 사람살이도 마찬가지다. 부모.스승.장관.국회의원이 본래의 존재의미와 개념을 잃어버릴 때 존재 그 자체의 상실과 혼돈을 겪으며 비극의 세계로 들어간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와 문화사의 비극이 또아리를 틀 듯 겹쳐진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정치인들이 줄줄이 '법무부 장학생'으로 간택돼 서울구치소에서 '권불십년, 화무백일홍'을 곱씹고 있다. 그들을 거기에 있게 하는 데 방조한 국민은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나무란다. 하지만 과연 '네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1968년부터 7년간 문화재청에서 근무할 때 나의 별명은'라면 통제관'이었다. 풀대죽 같은 라면값이 얼마나 된다고 2개 이상 먹지 못하게 하느냐는 핀잔섞인 별명이다. 지금 생각하면 불쌍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그때 우리들은 행복했다. 새로운 한국민속박물관을 창조하겠다는 의지에 불탔다. 존재의 의미가 분명했던 것이다.

21세기가 쾌속 발진을 시작한 21세기는 무한한 변모를 꾀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를 주도해야 할 최고 인프라는 윤리.도덕.가치의 회복이다. 의미의 창조없는 허세의 성장을 버리고 진실과 사랑, 은혜와 겸손의 미덕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구원과 봉사, 은혜, 자비로운 삶이 실종되고 죽어버린 사회는 절대로 복지와 행복, 부강의 나라로 진입할 수 없다.

선량한 축산농가는 조류독감과 광우병으로 날벼락을 맞고, 허명의 권력층은 돈벼락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즈음, 나의 샘물 속에도 더 퍼올릴 정화수가 바닥나 오염된 흙탕물이 나오고 있다. 총장의 책무를 일일삼성(一日三省)하면서 존재에 합당한 진정성이 무엇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경경위사(經經緯史)하여 남제주군 대정읍 해안에 남겨진 발자국처럼 천만년을 갈 수 있는 그런 존재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이종철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