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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쌓아둘 곳 없어 … 부산항 기능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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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5일 오전 5시 부산항 감만 한진·세방 컨테이너 터미널. 미국 동부해안으로 가는 한진 필라델피아호가 컨테이너 270개를 하역하고 950개를 선적했다. 한진 마이애미호도 140개를 내리고 840개를 실었다. 이전까지 101.8%에 달하던 장치율이 94.7%로 떨어졌다. 그러나 하역인부들의 바쁜 움직임도 잠시였다. 오후가 되면서 장치율이 다시 100%에 육박했다. 반출입이 완전히 중단됐다. 다른 부두도 마찬가지였다. 신감만 부두는 99.7%, 감만 대한통운·허치슨 터미널은 97.2%였다. 부산항 전체의 화물반출입량은 평소의 24%밖에 안 됐다. 평택항 동부두 국제터미널 적치장은 장치율이 97%에 달하고, 평소 70% 수준이던 군산항의 야적률은 80%를 넘어섰다.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거부가 사흘째 이어지면서 최대 수출기지인 부산항을 포함한 전국 항만이 부두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산업계도 몸살이다. 일부 기업은 운송료를 서둘러 타결했지만 화물연대가 운송거부를 풀지 않아 냉가슴만 앓고 있다. 개별협상을 해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이다.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는 임직원들이 14일 밤부터 새벽까지 임시번호판을 단 차량 300여 대를 직접 몰고 인근 경남 양산시로 운반했다. 기아차 광주공장 직원 300여 명도 광주 서구 풍암동 야적장과 광산구 평동 야적장으로 스포티지 등 1000여 대를 직접 몰아 운송했다. 지식경제부는 사흘 동안 수출 6억4100만 달러, 수입 6억7800만 달러 등 총 13억1900만 달러(1조3757억원)의 수출입 차질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15일 부산 남구 감만부두 앞에서 술에 취한 채 운행 중인 컨테이너 차량을 가로막고 소주병을 던져 차량을 파손한 혐의로 화물연대 조합원 천모(41)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개별 협상 소용 없어=LG전자 창원공장은 6일 운송료 15% 인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13일 화물연대의 전면 운송거부가 시작되자 합의문은 소용이 없었다. 화물연대는 이 회사의 제품 수송을 거부했다. 화물연대 제주지부는 12일 제주도 화물자동차운송주선사업협회와 운송료 15% 인상에 합의했다. 그런데도 13일부터 운송거부가 진행됐다. 이달 초 유가가 오른 만큼 전액 보전해 주는 ‘유가연동형 운송료 시스템’을 도입한 포스코는 14일부터 밤에 운송업체 하치장으로 물건을 옮기고 있다. 그러나 제철소 안에 물건을 쌓아놓지 않을 뿐 2만5000t의 육상출하는 여전히 막혀 있다.

◇쇼핑몰, 주유소로 불똥=저렴한 운송비를 앞세워 가격경쟁을 벌이던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어려움에 빠졌다. 일부 기업은 자체 운송인력을 동원하고, 수송료 인상 등 대책을 내놓으며 파국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CJ GLS는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화물차 운전자들의 유류비 전액을 본사가 부담키로 하면서 이들의 파업 합류를 간신히 막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화물연대 회원들이 대산공장 입구를 탱크로리로 막아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김기찬 기자, 부산=김상진 기자

◇장치율=항만 등에 컨테이너를 쌓아 놓을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는 바닥면적에 대비해 실제 컨테이너가 얼마나 쌓여 있는지를 나타내는 비율. 100㎡의 장치장에 30㎡만 컨테이너가 차지하고 있다면 장치율은 3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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