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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D-12] 각당 공식 선거전 돌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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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일 경남 창원을 방문해 시민들과 기호 1번을 연호하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안성식 기자]

▶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2일 대구 선대위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17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2일 시작됐다. 전국 243개 지역구에 출마한 1175명의 후보자들은 일제히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왔다. 각 당 지도부도 출사표를 던지고 선거지원 활동을 본격화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경남지역을 돌면서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탄핵세력 심판론'으로 맞섰다. 극심한 내분을 겪은 민주당에선 후보들이 지도부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나홀로 뛰는 모습을 보였다. 자민련도 출정식을 갖고 "교섭단체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진보세력의 잇따른 지지로 사기가 오른 민노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총선 목표로 내걸었다.

*** 한나라 "4년 어떻게 참나"

"(지지율 상승은)미미하지만 끝없는 추락은 멈춘 듯하다."

지난 1일 오후 부산 지역 순방을 마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대표로 선출된 지 10일 만에 보이는 자신감이었다. 전날 대구 지역을 돌아보고 온 것이 큰 힘이 된 듯했다. 볼이 쏙 들어갈 정도로 야위었지만 얼굴에선 여유가 느껴졌다. 2일 새벽 부산 공동어시장을 둘러본 朴대표는 곧바로 경남으로 향했다. 경남에서 출사표를 던지기로 한 것이다. TK(대구.경북)에서 불고 있는 '박근혜 바람'을 PK(부산.경남)지역으로 확산시킨 뒤 수도권으로 북상시킨다는 전략이다.

朴대표는 2일 오전 경남도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깨끗한 총선을 위한 선의의 경쟁▶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새로운 인물의 선출▶법치주의 근간 실험대 등 네가지 원칙을 갖고 이번 총선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朴대표는 특히 '거여(巨與)견제론'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1년간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을 이끄는 것을 보고 이대로 4년을 더 해도 되는지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朴대표는 또 "지금 상태라면 여당이 200~220석을 얻어 거대여당이 돼 일당독재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4년을 야당이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가면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朴대표는 마산 3.15 국립묘지 참배를 하고 본격적인 선거 지원활동에 들어갔다.

3.15 묘지에서는 朴대표 지지자들과 '박정희 망령 되살아난다'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 시민단체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朴대표가 가는 곳곳마다 많은 노인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60~70대는 쉬셔도 된다"는 말에 대해 거센 항의 표시를 했다. 마산어시장에선 한 60대 여성이 유세차에 뛰어 들어 "朴대표 걱정 말라, 60~70대가 표를 몰아주겠다"고 말했다.

朴대표는 이날 오후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진영이 포함된 김해을 선거구를 비롯해 창원.마산.진해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창원 가음정시장엔 붉은색 오픈카(지프)를 타고 나타나 "창원은 아버지(박정희 대통령)가 관심을 가진 곳으로 평소 남다르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창원.김해=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 민주당 "각자 알아서 뛴다"

'당엔 기댈 게 없다. 각자 알아서 뛴다'.

선거운동이 본격 시작된 2일 민주당 후보들은 각개약진에 돌입했다. 중앙당이 극심한 내분의 여파로 마비된 탓에 지원은 바랄 수도 없다. 탄핵 역풍을 피하기 위한 비책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탄핵풍 잠재우기'가 당면 과제였다.

서울 관악을의 유종필 후보는 유권자에게 "탄핵은 대통령과 현역의원 간의 문제로 우리같은 신인은 잘못이 없다"는 말로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 그는 "정당성 여부를 떠나 지도부가 무리하게 탄핵을 밀어붙인 탓에 신인들만 죽어난다"고 하소연했다. 주광덕(경기 구리)후보는 아예 "민주당이 많은 잘못을 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매를 맞겠다"며 자복(自服)하는 방법을 택했다. 서울 마포을의 유용화 후보도 "탄핵 이후 불안에 대해 여야 지도자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반성론'을 주창하고 있다.

당은 되도록 감추고 인물을 앞세우기도 한다. 전남 담양.곡성.장성에서 출마한 김효석 의원은 '우리 고장의 큰 일꾼, 호남의 큰 인물로 키워보자'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민주당'이란 간판이 이젠 호남에서조차 선거에 별 보탬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부천 원미을의 이강인 후보는 "중앙당의 지원은 이미 포기했고 더 이상 분란만 안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역시 고전 중인 김민석(서울 영등포갑) 전 의원은 같은 당 후보들에게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뛰자"는 e-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후보들의 고군분투와 달리 민주당 선대위는 이날 별 움직임이 없었다. 당초 국립현충원과 4.19묘지 참배 등이 계획됐으나 추미애 위원장의 건강문제로 취소됐다. 대신 김종인 공동선대위원장이 ▶차상위 빈곤층에 대한 기초생활 보장 전면 확대 ▶남북 공동 어로수역 설치 등 10대 민생공약을 발표했다. 몸을 추스른 秋위원장은 이날 저녁 당사를 찾아 "3일 제주 방문을 시작으로 전국 지원유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秋위원장과 벼랑끝 대립을 벌였던 조순형 대표는 이날 고속철을 타고 자신의 출마지인 대구로 내려갔다. 당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고속철 시대에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형상, 그것이 이날 민주당의 모습이었다.

강갑생 기자<kskk@joongang.co.kr>

*** 열린우리 "의회 권력 바꿀 때"

열린우리당은 김근태 원내대표 중심으로 출정식을 치렀다. "60~ 70대는 투표 않고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말로 물의를 빚은 정동영 당의장은 이날 하루 선거운동을 쉬고 말았다.

金대표는 이날 임채정.임종석 의원, 이인영 후보 등 서울지역 출마자들과 17대 총선 출정 합동 기자회견을 했다. 장소는 명동성당이었다. 1987년 6월항쟁 의미를 되새기는 뜻이라고 당 측은 설명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행정부 권력은 교체되었지만 의회권력은 아직도 수구세력들이 지배하고 있는 '동토의 왕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의 승리는 특정 정치세력이 아닌 모든 평화민주세력의 승리"라며 "총선에서 승리해 미완의 6월항쟁을 반드시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다. 남은 13일 동안 어떻게든 '탄핵풍'을 유지시켜 '민주 대 반민주'구도를 굳혀나가겠다는 구상이 드러났다.

金대표는 3일에는 실미도를 찾을 계획이다. 3공 시절에 있었던 불행한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은근히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각을 세우려는 계산이다.

이와 별도로 당 노동위원회(위원장 김영대)는 영등포 공판장 당사에서 '노동자 자원봉사단 발대식'을 했다. 자원봉사단으로는 120여명이 활동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과 지지층을 일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민주노동당을 견제하려는 포석이다. 鄭의장이 파문을 자초하는 바람에 열린우리당은 급히 金대표를 중심으로 선거운동 첫날을 맞이했다. 선거전략에는 첫날부터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金대표가 탄핵정국을 이어나가고, 鄭의장이 하동.진주.사천.통영.마산 등을 돌며 지역주의 타파를 역설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사과 기자회견 및 노인회 등을 방문한 鄭의장이 "노모와 함께 성당에 가 참회하겠다"며 경남지역에서의 모든 일정을 중단해 한쪽 계획은 전면적으로 꼬이고 말았다.

열린우리당은 대신 박영선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이번 총선을 통해 지역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하겠다"며 "30년 만에 전국 통합정당을 탄생시켜 달라"고 호소하는 데 그쳤다.

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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