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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 경제의 각자도생, 공조가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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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스태그플레이션 먹구름이 지구촌을 덮치면서 세계 경제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찾고 있다. 산유국은 비산유국들의 고통에 아랑곳없이 석유값 올리기에 혈안이다. 러시아 에너지기업인 가스프롬은 “유가가 내년에는 배럴당 2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석유 수요가 줄면 국제유가도 내려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중국·인도의 석유 수요 증가세가 멈출 조짐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에 위기가 닥치면 강대국들은 공조를 통해 해법을 찾았다. 1985년 제2차 오일쇼크 뒤에는 플라자 합의가 나왔다. 미국과 일본은 ‘달러 약세-엔 강세’를 유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협조개입까지 단행했다. 하지만 지금 강대국들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강한 달러가 미국의 이익”이라며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달러 약세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금리를 낮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진화해온 정책노선을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더 이상 인플레이션 부담을 감당키 힘들다는 의미다.

미국 FRB가 달러 매입에 나서자 일본은행은 달러 매도로 맞섰다. 협조개입은커녕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은행도 달러를 파는 시장개입에 나섰다. 미국과 아시아가 인플레이션 부담을 떠넘기기 위한 환율전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중국은 자기 발등의 불을 끄는 데 급급하다. 소비자물가가 치솟고 투기자본이 유입될 조짐을 보이자 은행 지급준비율을 높였다. 이로 인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냉각됐지만 중국이 긴축 고삐를 풀 기미는 없다.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보호무역도 세계 경제를 불안에 몰아넣고 있다. 중국은 쌀 등 주요 곡물에 수출관세를 매기고 수출보조금을 폐지했다. 인도네시아도 국내 쌀값이 목표치를 웃돌면 수출을 자동적으로 금지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옥수수에 높은 수출관세를 매기고 있다. 이런 보호무역조치들의 부담은 결국 수입국들에 전가된다.

위기는 약한 곳부터 찾아오게 마련이다. 현재 베트남이 그 예다. 물가는 25% 넘게 치솟았고 외국자본이 앞다투어 탈출하고 있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연일 금리인상을 통해 진화에 안간힘이지만 “베트남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경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한국은 그나마 재정이 괜찮은 상태고 외환보유액에도 여유가 있다. 기업들의 체질도 강해졌고 내부 유보금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그러나 위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막대한 가계 대출이 부담스럽고 부동산 시장이 언제 얼어붙을지 모른다. 출범 100일 만에 정부의 리더십이 크게 손상돼 경제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국제공조 체제의 복원이다. 하지만 우리도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선은 위기요인을 진단하고 내부 방화벽부터 단단히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공조가 시작되고 세계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고통을 참고 버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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