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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사유·절차 6시간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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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에 대한 2차 재판이 2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려 盧대통령 측과 소추위원 측의 대리인단이 5시간50분 동안 열띤 법리 공방을 벌였다.

헌재 전원재판부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엔 당사자인 盧대통령과 국회 법사위원장인 김기춘 소추위원은 출석하지 않았다. 대신 양측에선 각각 11명과 12명의 변호인이 나와 대통령 탄핵 사유를 놓고 첨예하게 맞섰다.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날 "이미 제출한 의견서 등으로 대신하겠다"며 5명의 변호사가 10분 정도로 간결하게 변론을 마쳤다. 가능한 한 빨리 재판을 끝내겠다는 계산에서다.

반면 소추위원 측은 "재판이 늦게 끝나더라도 서면으로 대체하지 말고 구두(口頭) 변론의 원칙을 지켜 달라"고 주장했다.

소추위원 측은 이미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를 그대로 읽는 바람에 재판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대통령 측의 문재인 변호사는 "소취위원 측이 변론 연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필리버스터(고의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탄핵사유 논쟁=소추위원 측은 "총선 때까지 재판을 중단해 달라"(한병채 변호사)며 포문을 열었다. 韓변호사는 ▶소추위원(김기춘 의원)이 선거 운동 때문에 재판에 출석할 수 없고▶탄핵 재판이 총선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고▶촛불집회 등이 헌재 결정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소추위원 측은 세가지 탄핵사유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정당성을 주장했다. 특히 盧대통령 취임 후 여택수 전 청와대 행정관이 롯데그룹 측에서 3억원을 받아 열린우리당 창당 자금으로 사용한 것과 관련, "呂씨가 이 돈을 임의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우며 盧대통령은 사실상 공범"이라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국정을 수행할 만한 도덕적.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만큼 헌재의 결정 이전에 하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반면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총선 전에 탄핵심판 사건을 진행하게 된 것은 야당이 서둘러 탄핵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측근 비리는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일어났거나 대통령과 관련성이 없어 탄핵사유에 해당할 수 없다'(김덕현 변호사), '대통령은 정치행위를 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 선거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이용훈 변호사)고 반박했다.

◆ 증거 채택 공방=재판 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증거조사 및 증인채택 부분에서는 양측 모두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소추위원 측은 청와대 자금 출납부와 盧대통령의 방송회견 녹화 영상물 등 20여건에 대한 증거 조사를 요구하고, 유지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29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에 대통령 측은 "측근 비리는 대통령 취임 전의 일이거나 공범관계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 3차 재판 9일 열기로

한편 헌재는 오는 9일 3차 재판을 열어 증인 및 증거조사 대상과 범위를 결정키로 했다.

전진배.이수기 기자

[뉴스 분석]

열린우리당의 '총선 후 분당(分黨)'얘기가 결국 터져나왔다. 당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놓고 여권 내에선 벌써부터 꿈틀대던 얘기다. "총선은 치러야 하니 지금은 참는다"며 억지로 절제했던 여권 주도세력들이었다.

그런데 문성근씨가 말을 꺼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文씨라면 다르다. 노사모를 이끈 그다. 최근엔 열린우리당의 공식 조직인 국민참여운동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인수위 시절 문화부 장관을 제의받았지만 완곡히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나는 노무현 대통령과는 개인적 친분도 없고, 친하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여권 내에선 盧대통령의 개혁코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1일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 다음'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정국을 어떻게 전망하나'는 기자의 질문에 어쩌면 '천기'인지도 모를 얘기를 하고 말았다. 질문 내용에 비춰볼 때 하지 않았어도 될 답변이었다. 결국 작심하고 한 얘기가 아닌가 하는 주변의 의혹이 있다. 물론 나중에 와전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마저 '치고 빠지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래서 파장도 작지 않다.

최근 당내 갈등 양상은 정체성의 위기에서 출발한다. 盧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뿌리를 훼손할 수 있는 사람들이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에 상당수 섞여 있다는 것이다. 문성근씨가 인터뷰에서 밝힌 '잡탕'의 의미다.

열린우리당 핵심 인사는 "의원 47명으로 출발해 당 지지도는 바닥을 헤맸고 누구도 총선 승리를 예상할 수 없을 때 급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용물에 상관없이 껍질만 되면 마구잡이로 사람을 영입하면서부터 불행은 시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당내 불만은 두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의 지역구인 창원을에 공천을 하지 않기로 한 내부 방침이 언론(본지 3월 25일자 1면)에 보도된 직후 당 지도부가 '색깔론'을 우려해 급행 공천을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한 영입인사는 "자칫 우리당을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 아니냐"는 극단적 발언까지 했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그런 인사가 열린우리당에서 배지를 달게 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어 당 지도부가 비례대표 전략후보 12명을 발표하면서 불만은 극에 달했다. 당시 당내에선 "한나라당에 가 있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불만까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등 여권 핵심에서는 이런 당내 움직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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