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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65>가장 위대한 경기는 매일 일어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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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호 26면

그땐 가슴이 저몄다. ‘캡틴’ 홍명보가 마지막 페널티킥을 성공시키고 그 선한 얼굴에 환한 미소로 달려올 때 ‘4강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환해지는데, 가슴에선 왠지 눈물이 났다. 그때 ‘아 이 순간이 나의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 아닐까’라고 스스로 물었다. 가슴은 그렇게 뛰고 있었다.

홍명보

그 경기가 열리기 불과 며칠 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 때 내 가슴은 더 쿵쾅거리며 요란하게 뛰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가슴이 요동쳤다. ‘아, 이 순간이 …’라고 스스로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흥분되고, 열광적이었던 경기는 없었다. 그 경기는 내 스포츠 역사에 가장 위대한 경기였다.

그러나 그 ‘안정환 경기’가 그 자리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지는 않다. 그 자리는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이승엽의 역전 홈런이 터진 한·일전 1차전. 이종범의 결승타와 오승환의 마무리로 이어진 한·일전 2차전 때 계속 바뀌었다.그리고 지금의 그 자리는 불과 한 달이 채 안 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맨유-첼시의 승부차기 마지막 순간, 아넬카의 킥이 반데사르의 손에 걸리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인사이드’가 변덕스러운가? 아닐 것이다. “가장 위대한 경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답이 없는 지독한 우문(愚問)이어서다. 얼마 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에 실린 리처드 샌도미어의 칼럼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기(The Greatest Game Ever)』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무려 1만7000권이나 있다고 한다. 미국 스포츠가 대중적이며 범위가 넓고 역사가 오래라고 해도 그런 제목을 가진 책이 그만큼이나 된다는 건 눈을 동그랗게 만든다.

그 책들은 1960년 빌 마제로스키(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7차전에 끝내기 홈런을 때린 경기, 57년 대학농구 결승전에서 노스캐롤라이나대가 윌트 체임벌린의 캔자스대를 상대로 3차 연장전 끝에 이겨 우승을 차지한 경기, 70년대 세계 헤비급을 평정했던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의 3차전 등을 다른 저자의 시각에서 다른 의미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1만7000권이라는 숫자에 눈이 동그래지면서도 한편으론 이해가 된다. 내 가슴속을 저미게 만든 순간이 단 한 번이 아니며, ‘가장 위대한 경기’ 역시 한 경기가 아니지 않은가.

올해 스포츠는 베이징 올림픽, 유로 2008 등 굵직한 이슈도 많고, 명승부·명장면도 많다. 관중이 부쩍 늘어난 프로야구도 위대한 순간을 쏟아내고 있다. 송진우의 2000탈삼진, 전준호의 2000경기 출전, 안타가 나올 때마다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갈아치우는 양준혁 등. 그 순간순간은 가장 위대한 순간의 하나가 되고, 그 경기는 가장 위대한 경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가장 위대한 경기는 하나가 아니며 매일 만들어진다. 그래서 선수들은 매일 매일 가장 위대한 경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그 순간과 호흡해야 한다. 우리도 그렇다. 오늘이 나의 가장 위대한 하루가 될 수 있기에 그렇게 숨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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