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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경수로기획단의 我田引水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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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5일 타결된 뉴욕 경수로 협상결과에 대해 정부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태들은 그야말로 「제 논에 물 대는」식의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선 협상결과를 처음부터 철저히 공개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타결내용에서 핵심적인 주요 개념들을 제 멋대로 왜곡,우리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늘어놓는 경우가 적지않다. 경수로기획단이 구사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수법으로 이른바 「용어혼란」전술을 꼽을 수 있다.
기획단이 15일 공개한 공급협정 원문에 따르면 우리는 북한에「물양장(物揚場)」을 지어주도록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물양장은다름아닌 바지선 접안시설로 일종의 간이 항만설비다.정부가 북한에 항만시설을 지어준다고 할 경우 국내에서 반 발이 생길 것을우려한 나머지 한글사전에도 없는 「물양장」이란 신조어를 급조한것이다. 시뮬레이터도 마찬가지다.그동안 국내언론은 물론 정부도이 1,500만달러 상당의 설비를 줄곧 「시뮬레이터」라는 용어로 써왔다.그러나 경수로기획단은 이번에 발표하면서 돌연 「모의안전훈련대」라는 생소한 용어를 등장시켰다.결과적으로 정 부가 일반국민에게 시뮬레이터와 모의안전훈련대가 전혀 별개의 설비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 공급범위 조항에서 당초에는 없었던 「중.저준위 방사 폐기물 저장시설」과 「최초 장전핵연료」등도 15일 내놓은 발표문에슬그머니 등장했다.뿐만 아니라 정부는 언론을 상대로 은근슬쩍 거짓말을 구사하는 배짱(?)도 보였다.최동진(崔 東鎭)경수로기획단장은 지난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프로그램코디네이터(PC)와 관련,『협정문에 「PC를 설치한다」는 규정이 전부다』라고 말했다.그의 말대로라면 PC문제는 그냥 「설치하는」 정도지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 가 된다.그러나 정작 15일 공개된 협정문 4조 2항은 『PC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도와 경수로 프로젝트 전반을 관장한다』고 명시하고있다.PC의 역할이 당초 우리 입장보다 포괄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경수로 상환조건도 마찬가지다.협정문에 따르면 북한은 40억달러(약3조2,000억원)에 상당한 공사대금을 무이자로 20년간 분할 상환하게끔 돼 있다.
이는 당초 우리 정부가 추진한 10년 분할 상환 조건보다 기간이 무려 두배가 늘어난 것이다.그러나 정부는 이에대해 일언반구 해명이 없다.다만 『국가간 외교협상 사안은 밝힐 수 없다』는 말을 구두선(口頭禪)처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 다.평소 소리높이 외치던 「정직한 정부」를 과연 어디서 찾아봐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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