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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라운지] '정보 첨병' 주한 외교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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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젠 서울이 아시아의 외교 중심이다. 6자회담 이후 뚜렷해진 변화다. 한 일본 외교관은 "서울을 통해 평양.베이징(北京), 그리고 워싱턴을 본다"고 말할 정도다. 그뿐만 아니다. 세계 각국의 기업인들도 줄지어 서울을 찾는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의 일과 삶을 소개하는 난을 격주로 마련한다. [편집자]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하루 앞둔 지난달 11일 주한 미국대사관에는 밤 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중국대사관과 일본대사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정국을 분석해 본국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 "두달 내 안정" 美에 타전

탄핵안 가결 하루 뒤인 13일. 토머스 허버드 미국대사는 전화기를 들고 워싱턴을 호출했다. 상대는 국무부 고위 인사였다. "절대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말로 대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당시 CNN은 한 덩어리로 엉클어진 한국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었다.

대사는 "이 상황은 완전히 헌법적인 절차"라고 전제한 뒤 "탄핵 뒤에도 한국 내 모든 상황이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워싱턴은 안심했다. 정보는 어떻게 수집됐을까. 공식 조직은 정무과와 경제과다. 담당 참사 아래 10여명이 배속돼 있다. 외교관도 있고 한국인 직원도 있다. 탄핵사태는 에릭 존 정무참사가 실무책임자다.

존 참사는 "탄핵안이 통과되더라도 2개월 내에 정국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고 이를 워싱턴에 보고했다"며 "워싱턴의 반응은 주한 미국대사관의 보고에 근거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사관의 정보수집 창구는 ▶신문.잡지.인터넷 분석 ▶한국 내 미국기업.한국기업.민간 및 관변 연구소 ▶파티.만찬.술자리 등 다양하다. 대사관 직원들은 기자처럼 정보원들을 관리한다.

*** 3월 12일 네차례 회의

중국대사관은 거의 모든 직원이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게 강점이다. 리빈(李濱)대사는 북한에서 19년, 한국에서 4년을 산 '한국인 같은 중국인'이다. 지난달 부임한 정치참사 싱하이밍(邢海明)도 1992년 한.중 수교의 실무 총책을 맡았다. 북한 사리원 농대에서 조선어를 전공했다. 정치처 주임 진옌광(金燕光)과 부주임 천샤오춘(陳少春)은 김일성대학 조선어과 출신이다. 경제부도 마찬가지다. 담당 공사는 물론 과학기술.문화.교육 담당의 서기관 3명과 중국인 직원 10명 가운데 한명만 제외하고 모두 한국어에 능숙하다.

국내 언론을 상대로 한 1차 정보 수집 및 분석은 관영 신화통신, 당기관지 인민일보의 서울특파원에게 맡긴다. 그리고 대사관 내 한국통들은 직접 대학교수.기자.안보전문가들을 찾아나선다. 대사도 예외가 아니다. 당대표.국회의원.언론사대표 등과 꾸준하게 접촉한다. 정치처 요원들은 탄핵안이 가결된 12일 네차례 회의를 열고 '큰 혼란 없을 것'이란 요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본국으로 보냈다. 직원 전체가 평소부터 수집했던 정보와 분석이 포함된 것이다.

*** 탄핵 가결되자 당황

일본대사관의 탄핵 정국 분석에는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정무공사를 중심으로 5명의 참사관과 약 10명의 스태프, 박사급 전문조사원들도 가세했다. 스기야마 공사는 정계.관계.학계에 폭넓은 지인을 갖고 있는 마당발이다. 웬만한 정보 확인은 전화 한통으로 끝낼 수 있다.

일본대사관은 이번 탄핵 사태 직전에 "탄핵까지는 가지 않고 정치적 해결을 볼 것 같다"는 보고를 본국에 보냈다가 막상 탄핵안이 가결되자 상당히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탄핵안 가결 직후 곧바로 헌법재판관들의 성향 연구에 착수했다.

최원기.예영준.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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