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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을 먹는 즐거움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

지금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와 서해안에서는 병어 축제가 한창이다. 많이 잡혀 값은 싸고, 그래서 홀대받고 있지만 태생적으로 자연산일 수밖에 없는 병어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우리들의 ‘맛 나는’ 생선이다. 막걸리 한 잔과 안도현 시인의 시 ‘병어회와 깻잎’을 벗 삼아 초여름 밤에 병어회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뭘 먹으러 가죠?”

요즘 우리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최근에 회식을 위해 들른 곳을 따져 보니 횟집이 대부분이다. 제철음식을 찾아보다가, 결국에는 전라도식 횟집으로 향한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있다가 재개발 때문에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긴 ‘여수 한두레(02-737-4343)’에서 병어회무침과 막걸리를 시켰다.

“병어회엔 막걸리지. 지금 전라도 신안 앞바다에 가면 병어가 한창이야. 회무침도 좋지만 뼈째로 썰어 놓은 병어를 된장에 찍어 상추나 깻잎에 싸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한 게 그만이지.”

“전라도에선 선술집에 가도 병어회가 안주로 나오잖아요. 오래 전 군산에 들러 혼자 막걸리 한 잔 할 때 먹어본 병어회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허름한 시장 어귀 막걸리 집에서 생각지도 않은 생선회가 나오니 ‘이게 왠거냐’ 싶더라고요.”
“안도현 시인의 ‘병어회와 깻잎’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에도 군산 앞바다 선술집이 등장하지. 병어회가 서울에서야 별미지만, 그곳에서는 친근하면서도 서민적인 음식이잖아.”

“게다가 도미나 광어와 달리 병어는 모두 ‘자연산’이잖아요.”
하긴 그렇다. 고급 일식집에서 비싼 생선을 먹으면서도 국내산인지 자연산인지를 걱정하면서 먹을 바에는 우리 앞바다에서 많이 잡혀 값싸면서도 자연산밖에 없는 생선을 즐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먹을거리에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시장에서 흔히 마주치고 우리 밥상에 올리기에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것들을 홀대하고 있는 셈이다.

“맛난 것을 찾는다고 하면서 먹을거리의 질을 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 값비싼 것을 대량생산해서 다수의 소비자가 값싸게 즐기게 한다지만, 예를 들어 고급 횟감용 생선을 가두리 양식장에서 키워 대량으로 공급하지만 양식 과정에서 항생제를 투여한다면, 먹을거리의 질, 심지어 안전성을 믿을 수 없게 되잖아.”

대중매체의 온갖 맛집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맛나고 몸에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를 ‘군침 흘리게’ 제공하면서도, 정작 먹을거리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고 있지 않는 것이 아쉽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게 가장 큰 소원이었다면, 이제는 먹을거리가 넘치고 있으니 ‘맛난’ 것을 찾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식량증산이라는 먹을거리의 대량생산 체계가 낳은 문제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잖아요. 최근 ‘웰빙’이라는 것도 개인주의적이고 단편적인 면이 강하고요.”

“최근의 광우병이나 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뜨거운 것은 좋은데, 먹을거리에 대한 환경의 관점 또는 생태학적 관점에서의 관심이 부족한 게 사실이지.”
매년 경작으로 인한 비옥한 토지의 황폐화와 화학비료 사용의 증가, 살충제의 남용, 경작지 확대를 위한 녹지와 생태계의 파괴, 그에 따른 기후와 환경의 변화로 인한 사막화의 역작용, 곡물의 과잉 생산에도 불구하고 지구 한편에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기아들, 초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여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광우병의 공포 등등. 지난 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시행해온 식량증산 위주의 식량정책에 대한 믿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다.

“‘친환경적인 유기농법’이 대안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농업시스템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나요?”
“이야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데 매콤한 병어조림은 이 집에 없냐? 어, 서대회가 있네. 한 접시 시켜라. 막걸리도 없다.”
“서대회는 좀 지나야 제철이에요, 선배!”

매콤한 병어조림과 굵은 소금을 뿌려구운 병어구이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나누리병원 뒤에 있는 ‘가시리(02-546-0056)’에서 맛볼 수 있으며, 대치동 대치사거리의 ‘오동도(02-557-0039)’에서도 병어회무침과 병어조림을 즐길 수 있다. 전라남도 신안을 비롯해 서해안에서는 요즘 병어 철을 맞아 병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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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이론과실천 대표)·정한진(창원전문대 식품조리과 교수)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김태경,정한진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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