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스크바에서] 뒤로가는 '民主시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달 31일 오전 모스크바 중심가의 국가두마(하원) 건물 앞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국가 반대한다!" "헌법을 존중하라"는 등의 구호가 쓰인 피켓을 들고 20~30명이 시위를 벌였고 경찰이 이들을 해산하려고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시위는 하원이 국민의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심하게 제한하는 '집회.시위.가두행진에 관한 법률안'을 심의하는 시각에 벌어졌다. 지난해 법무부가 입안해 제출한 이 법안은 의회.대통령관저.정부청사 등 주요 건물과 도로 및 철도.송유관.발전소 등 국가기간시설 주위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전신고만 하면 어디에서나 시위할 수 있도록 허용했던 현행 집시법을 크게 고친 것이다.

물론 공방이 벌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공산당 등 야당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조롱"이라고 반박했다. 법안은 찬성 294, 반대 137의 압도적 표차로 승인됐다. 물론 하원이 두차례 더 심의.표결해야 하고 상원과 대통령이 승인해야 정식으로 법률이 된다. 하지만 크렘린의 상.하원 장악력을 고려할 때 법안이 최종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집권2기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은 강력한 국가주도의 개혁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민의 다수도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성과가 드리우는 그늘도 짙어간다. 대기업인.야당지도자.자유언론인 등에 대한 크렘린의 탄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고, 정권의 권위주의화.독재화 경향에 대한 지적도 만만찮다. 체첸에서의 인권 유린 사태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민주주의 원칙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다.

유철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