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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10년 아성 이창호 다시 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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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 전열을 정비한 이창호9단(右)이 LG배에서 목진석7단의 강력한 도전을 뿌리치고 일인자의 왕좌를 지켜냈다.

'10년권세'의 이창호9단은 여전히 건재했다. 최철한7단에 이어 '괴동'목진석7단의 폭풍 같은 협공에 휘말려 천하의 이창호도 권좌가 흔들리는구나 싶었지만 이9단은 서서히 전열을 정비하더니 마치 로마군단처럼 목진석을 밀어붙였다. 결국 1일의 LG배세계기왕전 결승4국에서 이9단은 불과 107수 만에 불계승하며 3대1의 스코어로 우승했다. 자신의 20번째 세계대회 우승컵이었다. 우승상금은 2억5000만원, 준우승 8000만원.

지난달 9일 결승전이 시작됐을 때 먼저 승리한 쪽은 신예 목진석7단이었다. 그는 5번기의 첫판을 쾌승하며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모습의 이9단을 벼랑으로 몰았다. 국수전에서 최철한7단에게 타이틀을 내줬던 이9단이 LG배에서조차 목진석에게 패배하자 '이창호시대는 저무는가'하는 성급한 제목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뒤덮었다. 그러나 이9단은 2국부터 4국까지 내리 3연승하며 10년 정상의 위력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최종국 진행=1일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4국은 초반부터 흑을 쥔 이창호의 흐름이었다. 이틀전 1대1 상태에서 3국을 이긴 이9단은 이미 정신적으로 기선을 제압한 상태였고 이것이 예상 외의 단명국으로 이어졌다.

목7단은 초반에 너무 많은 실리를 허용했고 그것이 결국 독약이 됐다. 실리부족으로 전투마다 오직 최강의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반대로 여러 가지 카드를 지닌 이9단은 공수의 강약을 느긋하게 조절할 수 있었다. 목7단의 강력한 저항으로 오후부터 시간을 물쓰듯 하는 험난한 중앙전이 펼쳐졌다. 흑진을 파고든 목진석은 목숨이 위태로운 와중에서도 꾸준히 역습을 노렸으나 우세한 이창호는 돌다리를 두드리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하이라이트

<장면1>=이9단이 흑1로 어깨를 짚었을 때 목7단은 백△ 두점을 포기하고 2-6까지 좌측에 세력을 편다.그러나 이 작전은 흑9라는 평범한 한수로 실패를 맞보게된다.귀의 실리를 내주고 중앙에 집을 지었으나 과잉투자에 비해 너무 적은 집.이것이 실리부족에 허덕이게 된 원인이다.최명훈8단은 “이래서는 백이 이길 수 없는 바둑”이라고 단정했다.

<장면2>=백은 난타전을 벌이며 반격을 노렸으나 이9단의 완벽한 대비에 기회를 잡지 못한채 좌절하는 장면이다.목7단은 흑4로 포위하자 돌연 돌을 던진다.대마는 살지만 흑이 하변을 차지하면 어차피 진다.그렇더라도 아직 빈 땅이 많은데 여기서 항복한 것은 큰 승부에서 보기 힘든 모습.비록 졌으나 담백한 패배였다.그는 백3에다 나머지 시간을 다 털어넣었다.그때부터 옥쇄를 결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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