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네 놀이터 300개 ‘동화 디자인’새옷 입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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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상상어린이공원’ 현상 공모에 당선된 은평구 대조공원의 ‘걸리버의 저녁 초대’ 조감도. 대형 포크로 만든 계단, 대형 수저로 만든 미끄럼틀, 거대한 프라이팬 모양의 암벽타기 공간 등이 있다. [서울시 제공]

‘얘들아 숲에서 놀자’를 주제로 조성되는 강북구 번동 벌말어린이공원 조감도.

대학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한 김리라(32·여)씨. 그녀는 초등 4학년 때까지 서울 여의도에서 자랐다. 이후의 청소년기는 독일 본에서 살았다.

“어릴 적에 놀았던 놀이터는 죄다 철제 시설물이었어요. 그네는 탈 때마다 ‘끽끽’ 소리가 났었죠. 반면 독일에서는 놀이터 시설물 재질이 주로 나무더군요. 디자인도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그녀는 이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해서 놀이터 모델을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걸리버의 저녁 초대’.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동화 ‘걸리버 여행기’를 소재로 삼은 것이다. 이 놀이터에선 계단이 대형 포크처럼 생겼다. 어린이들은 프라이팬을 세워 놓은 것처럼 생긴 암벽을 오르고, 대형 숟가락 모양의 미끄럼틀을 탄다. 부모는 ‘소시지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본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의 난쟁이가 된 듯한 환상을 체험하게 해주는 곳이다.

이 놀이터는 올 연말까지 실제로 서울시내에 만들어진다. 서울시가 실시한 어린이 테마 공원인 ‘상상어린이공원’ 설계안 현상 공모에서 김씨의 아이디어가 최우수작 10개 가운데 하나로 뽑혔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공모전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10년이 넘은 노후한 어린이 공원(놀이터) 300곳을 2010년까지 바꾸기로 했다. 서울시내 전체 어린이 공원 1074곳 중 약 30%에 해당한다. 낡고 위험한 놀이터를 어린이들이 꿈과 상상을 키울 수 있는 테마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 주택 건설업체가 직접 짓는 놀이터는 여기서 제외된다. 이 사업에는 모두 876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올해부터 해마다 100곳씩을 바꾼다는 계획이다.

◇어린이들이 ‘놀이터 디자인’ 선택=서울시는 ‘상상어린이공원’ 대상지 중 10개 동네를 골라 이들 지역 여건에 맞는 놀이터 모델을 공모했다. ‘걸리버의 저녁 초대’는 단독주택 지역에 미취학 아동이 많은 은평구 대조동 대조공원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것이다. 초등학생이 많이 이용하는 강서구 화곡4동 종달새공원에는 과학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놀이터 디자인이 채택됐다. 해시계나 요술거울 등을 곳곳에 배치한 ‘알쏭달쏭 착시나라’라는 작품이다.

주변 녹지와 인접해 있는 금실공원(양천구 신월7동)에는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이름의 모델이 적용된다. 나뭇잎 지붕, 나무 이야기 산책로, 나뭇가지 통로 등 나무를 소재로 한 놀이 시설물이 배치된다.

서울시는 8월까지 해당 지역 어린이 및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 공원 실시 설계를 하기로 했다. 10가지 놀이터 디자인 중 몇 가지 유형을 제시한 뒤 어린이들이 직접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는 미취학 어린이가 많은 곳에는 필수적으로 모래놀이 공간을 도입하기로 했다. 시는 지난 1월 제정된 ‘어린이놀이시설안전관리법’에 따라 모래의 위생 상태를 엄격히 관리할 계획이다. 놀이터 시설물 소재도 되도록 환경 친화적인 소재를 사용하기로 했다.

안승일 푸른도시국장은 “놀이터 조성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고, 상상력이 실제로 실현되는 과정을 어린이들이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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