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힐러리의 눈높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힐러리가 남편 빌과 함께 고향(시카고 교외의 파크 리지)에 갔다. 둘은 주유소 매점에 들렀다. 그들을 몰라본 점원은 ‘이곳 출신인 힐러리와 고교시절 사귀었다. 우린 결혼도 생각했었다’고 허풍을 떨었다. 클린턴은 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저 사람과 혼인했다면 지금 주유소 직원의 부인이 돼 있을 거야.’ 그러자 힐러리는 ‘내가 그와 결혼했다면 지금 미국 대통령은 당신이 아닌 바로 저 사람일 거야’라고 대꾸했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던 시절 유행했던 우스개다. 힐러리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힐러리의 뛰어난 정치능력을 말해주는 유머”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반대파인 공화당에선 “힐러리의 권력욕은 주유소 직원을 대통령으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무섭다”며 공격의 소재로 활용했다.

양쪽 주장 모두 맞는 말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정치적 재능은 타고났다. 1969년 3월 웨슬리대 졸업식에서 그는 학생대표로 연단에 섰다. “연설권을 주지 않으면 졸업식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쟁취한 결과였다. 힐러리는 연설에서 베트남전에 왜 반대해야 하는지를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걸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서 정치를 실천하는 게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런 정치의식과 소질을 오랫동안 가다듬은 그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실패한 까닭은 뭘까. 코커스(당원대회) 지역 방치 등 전략적 실수를 비롯한 많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중 결정적 패인을 꼽는다면 ‘지나친 권력욕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의 눈은 권력만 조준했고, 목표는 권력 그 자체였던 것처럼 보인 게 제일 큰 문제였다는 얘기다.

힐러리는 지난해 1월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나는 이기기 위해 뛰어든다(I’m in to win)”고 말했다. 그다운 야무진 표현이었지만 ‘권력은 내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 오만한 말이기도 했다. 그는 경선 전부터 대통령 후보가 다 된 양 행세했다. ‘힐러리 불가피성(inevitability)’이란 용어를 쓰며 자신이 후보가 되는 건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힐러리는 자기 경험을 과신하고, 오바마를 풋내기로 얕본 나머지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국민은 변화를 바라고 새로운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다. 1992년 남편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 건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을 읽었기 때문이라는 걸 깡그리 잊어버린 듯싶었다.

만일 힐러리가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뛰어든다(I’m in to hear your voices)’는 마음가짐으로 경선에 임했다면 어땠을까. 그의 행동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백악관 입성 첫날부터 잘할 것”이라며 국민은 믿고 따르면 된다는 식의 거만한 태도는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국민이 바라는 걸 찾고, 그걸 정책으로 가다듬는 일에 주력했을 것이다. 경험이 많은 그가 국민의 바람을 정확히 인식하고, 대변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면 경선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힐러리는 지금 비탄과 회한에 잠겨 있을지 모른다. 오바마를 적극 지지한다는 연설을 했지만 속은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 권력을 잡을 기회를 놓쳤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그가 눈높이를 백악관이 아닌 국민에 맞춘다면 할 일은 많다. “여성에게 가장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glass ceiling)을 깨진 못했으나 거기에 1800만 개의 틈(경선에서 1800만 표 획득)을 냈다”고 자부한 만큼 여성에 대한 남은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서면 어떨까. 2000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처음 도전했을 때 뉴욕주 곳곳을 돌며 주민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런 겸허한 모습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권력을 잊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 유리천장을 깰 기회가 다시 주어질지 모른다.

이상일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