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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영의 DVD세상] 영화가 영화를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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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수록작품 : 네멋대로 해라, 사랑과 경멸, 미치광이 피에로
감독 : 장 뤽 고다르
주연 : 장 폴 벨몽도, 안나 카리나, 브리지트 바르도 외
화면비 :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 2.35:1, 풀 스크린 1.33:1
사운드 : 프랑스어 돌비 디지털 모노
자막 : 한국어, 영어
제작사 : 드림믹스 영화 ★★★★ 화질 ★★★☆ 음질 ★★★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 너머 멀찌감치 떨어져 한 무리의 촬영팀이 원경으로 보인다. 특이하게도 영화의 크레딧을 성우의 목소리로 대신하는 가운데, 화면을 가로질러 놓인 트랙을 따라 카메라와 촬영팀이 천천히 화면을 향해 다가온다. 이윽고 화면 앞으로 다가온 카메라가 마치 관객을 찍듯 정면을 향해 돌아서며 영화는 시작된다.

세계 영화계의 새로운 물결, 누벨 바그의 선두주자였던 장 뤽 고다르의 1963년작 '사랑과 경멸'은 다소 난해한 첫 장면에서 확인되듯 영화를 통해 영화의 구조와 과정을 고찰하는 이른바 '영화에 관한 영화'일 것이다. 1960년대 세계 영화계는 이른바 누벨 바그로 대표되는 새로운 영화를 맞고 있었으며 그들이 이전 영화와 확연히 구별되는 점은 영화 자체에 대한 탐구, 자기 반영성에 있었다. 특히 고다르는 영화매체에 대한 탐구, 그 중에서도 할리우드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풍자를 담고자 했다. 이 영화는 고다르로서는 예외적으로 드물게 이탈리아의 제작자 카를르 퐁티와 조셉 레빈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브리지트 바르도, 잭 팔란스 같은 스타급들이 대거 기용된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아내(브리지트 바르도)에게 치근거리는 미국인 제작자(잭 팔란스)와 이를 못 본 척 묵과하는 시나리오 작가(미셸 피콜리), 그리고 위대한 독일 감독 프리츠 랑과 제작자의 대립은 고다르가 바라보던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하에서의 제작자와 감독.스타.작가와의 관계였다. 특히 그 자신 역시 제작자의 압력으로 스타를 기용했던 고다르는 오히려 이를 폭로하고 '경멸'한다. 영화의 첫 장면을 세계적인 섹스 심벌 브리지트 바르도의 나신으로 시작하지만 푸른색의 촌스러운 필터로 촬영된 이 장면은 조금도 섹시하거나 에로틱하지 않다.

진정으로 현대영화의 시작으로 칭해지며 누구보다 누벨 바그의 정신에 가까웠던 장 뤽 고다르의 영화는 흔히 시기별로 할리우드 장르에 대한 실험에 몰두했던 1960년대, 68 혁명 무렵의 급격한 정치적 시기인 지가 베르토프 시기, 그리고 80년대 이후 의사소통과 영화, 그리고 역사에 몰두하는 시기로 나뉜다. 이번에 출시되는 고다르 컬렉션은 장르, 특히 할리우드 장르에 몰두했던 초기작이다. '사랑과 경멸'을 포함해 할리우드 B급 장르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는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그리고 감독 스스로 '최후의 로맨틱한 커플'에 관한 이야기라 칭했던 '미치광이 피에로' 등 총 3편의 작품이 수록됐으며 이 중 '사랑과 경멸'은 서플먼트 디스크를 포함한 두 장의 디스크에 나눠 수록됐다. 서플먼트의 경우 '네 멋대로 해라'와 '미치광이 피에로'는 예고편 정도로 소박한 편이지만 '사랑과 경멸'은 프리츠 랑과 고다르의 대화, 고다르, 촬영감독 라울 쿠다르 인터뷰, 영화의 장면을 와이드 스크린과 풀 스크린으로 비교해 보는 항목 등 실속있는 서플로 가득하다.

***조 장면

'네 멋대로 해라'에서 미국인 여인에게 배신당한 반영웅, 미셸(장 폴 벨몽도)은 경찰관의 총을 맞고 비틀거리며 거리를 달려간다. 그의 뒷모습을 길게 쫓아 달려가는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인용되고 재창조되었다.

***요 대사

고다르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 위대한 감독들을 등장시켰다. B급 영화의 거장이었던 새뮤얼 풀러는 '미치광이 피에로'에 직접 출연해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답한다. "영화란 전쟁터와 같습니다. 사랑.증오.액션.폭력.죽음, 한마디로 감정입니다"

모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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